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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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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빼다 # 33. 방을 빼다 방의 짐을 정리합니다. 여기로 옮긴 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와이셔츠 몇 장, 바지 세 벌, 수건과 세면도구, 전기요 등... 트렁크 하나와 백팩 하나에 다 들어갑니다. 정리하고 난 썰렁한 방안을 둘러보니, 한 평 고시원이 꽤 넓어 보입니다. 다시는 서울 생활을 안 할줄 알았는데, 벌써 이 도시에서 2년을 살았습니다. 군대 2년이면 어마어마한 시간인데, 금번의 2년은 진짜 훌쩍 가버렸습니다. 조금은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렇게 빨리 지나간 걸 보면 그렇지도 않았는지 모릅니다. 1년을 고시원에서 보냈습니다. 머리와 발이 동시에 닿는 공간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갑갑했지만, 또 지내보니 아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걸어서 출퇴근 할 수 있고, 그래서 싫어하는 지하철을 안 타도 되는..
글쓰기 50일 # 32. 글쓰기 50일 윽! 벌써 반이 지났다고요? 시간이 어마무시하게 빨리 지나갑니다. 그럼 내 글이 50개나 있겠네? 하고 보니 45개가 있습니다. 2개는 워밍업 글이니 7일을 빼먹었네요. 그래도 43일을 적었단 말이여? 갑자기 뿌듯해질라 그럽니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고 가장 큰 변화는 하루를 복기하거나 생활속에서 글감을 찾는 습관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그 다이나믹 하던 일상과 달리 요즘은 거의 같은 패턴의 반복이므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지 않는 한 글감은 숨어서 나오질 않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읽을 거리가 많아졌다는 겁니다. 글쓰기 동지들이 올린 글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읽고 댓글을 달다보면 내 글 쓰는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감시간을 넘기기가 일쑤입니다. 못..
김치찌개 # 31. 김치찌개 "여보, 연휴도 다 끝나가는데 밖에서 맛나는 거 사묵자." "안돼! 대신 내가 맛나는 김치찌개 만들께." "집에 돼지고기 있나?" "응, 있을 거야." "산들강은 어때?" "좋아요." 이렇게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로 결정되었습니다. 밖에서 먹어봐야 그게 그거고, 또 이번 연휴에 외식도 두어번 했고, 갓 지은 밥에 돼지고기가 넉넉한 김치찌개면 왠만한 외식보다 땡깁니다. 밥을 안치고 김치찌개 만들 준비를 합니다. "산이 엄마, 돼지고기 못 찾겠다, 꾀꼬리. 어디 있어?" "거기 냉동실에 있잖아, 나와 봐. 내가 찾아줄께" 아내가 찾아준 돼지고기를 보니 벌써 색깔도 거무튀튀하게 된 게, 냉동실에서 적어도 삼백만년은 잠잔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아이고, 이 여편네야. 비계살 두툼한 돼지고기 김..
중국 언니들 # 30. 중국 언니들 "진 징리, 추석에 한국에 가?" "아니, 안가. 왜?" "그러면 밥이나 같이 먹자고" "나야 좋지" 전화가 온 것은 내가 자주 가는 KTV 마미이자 친구인 리우신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의 중국 생활에서 몇 안되는 맘을 터 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이자 의지가 되는 친구입니다. 서로 친해질 무렵 그녀는 KTV의 마담으로 들어갔고, 일의 특성?상 자주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단골 고객이 되어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추석 연휴에 고향에 못가고 중국땅에서 외로이 시간을 보낼 나를 위해 밥을 먹자고 하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대충 츄리닝을 걸치고 차를 몰고 오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엉? 여긴 식당이 아닌데...." 하는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개, 가족이 되다 # 29. 개, 가족이 되다 "깨개갱, 깨깽"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보았다. 소리나는 쪽은 벌써 논두렁 저쪽이고 멍군이를 친 차는 유유히 나를 앞질러 갔다. 아이들이 튕겨나간 멍군이를 찾아 안고 왔다.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다리에는 피가 흘렀다. 움직이질 않았고 짖지도 않았다. 멍군이는 두 살 난 우리집 강아지 이름이다. 지인이 여행 기간 동안 우리집에 맡겨 놓았고, 그 짧은 시간에 우리집 막내와 정이 들대로 들어, 여행에서 돌아온 지인이 대성통곡을 하는 우리 막내에게 분양했다. 그래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생겼다. 분양 전에 막내에게 멍군이의 모든 돌봄은 자신이 하겠노라고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하여 밥 주는 거부터 시작해서 목욕을 시키고 산책을 시키고..
명절 봉투 # 28. 명절 봉투 언제나 명절이면 여러가지 준비할 것이 많다. 이번 추석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봉투를 준비한다. 어머니, 아버지, 장모님 드릴 용돈 봉투다. 아내에게도 명절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한다. 친지들 드릴 봉투도 물론 마련한다. 용돈 뿐만 아니라 백화점 상품권도 여럿 준비하고 주위에 돌릴 선물도 여러개 사 놓았다. 추석에 아이들이 절을 한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어차피 용돈을 줘야 하고 그 돈이 그 돈이니 기분좋게 넉넉하게 준다. 조카들도 한둘이 아니라 왠만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렇다고 생까면 모양새가 빠진다. 조무래기들은 모르겠다. 아내가 알아서 하겠지. 일단 대학생들에게만 오만원을 준다. 어른들을 모시고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당연히 장손이 내야한다. 추석전에 그렇게 준비..
내 죽으면 공원묘지에 묻어라 # 27. 내 죽으면 공원묘지에 묻어라 "내 죽으면 공원묘지에 묻어라. 한 세 평 정도 사서 지금 할배 할배 산소도 다 이장하고 그 무덤에 화장한 뼛가루만 같이 묻으면 느거가 절하러 오기도 수월할게다." 성묘 다녀와서 과일을 깍으면서 엄니가 말씀하신다. "아직 30년은 더 살 것 같은데 뭐 그런 말씀을 벌써 하세요?" 라며 귓등으로 들었는데, 엄니는 돌아가신 그 이후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또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어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주로 나온 말들이 부모들의 건강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모신 지 오래된 용석이 엄마, 암 말기에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용식이 엄마, 얼마전에 돌아가신 수경이 아버지, 지훈이는 장인 어른이 오늘 내일 하셔서 비상 대기한다고 모임에 오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
친구 갑수 # 26. 친구 갑수 차에서 라디오를 틀었는데, 여행작가 최갑수의 이름이 나왔다. 책 읽어 주는 아빠라는 프로그램이란다. 오호, 이런 우연이. 이라는 책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갑수에게 바로 톡을 보낸다. 오빠 책이 지금 라디오에 나온다고. 자기가 쫌 유명하댄다. ㅋㅋ. 이달 28일에 장유 도서관에서 강연이 있다고 보내온다. 간다고 하니 쪽팔린다고 오지 말랜다. 강연 마치고 밤에 전어회나 한 접시 하자고 한다. 아내는 책 제목을 보더니 아직도 사랑타령을 한다며 웃는다. 갑수랑은 고3 같은 반이었다. 갑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자연반인데 인문반쪽으로 진학한다고 선생님한테 얻어맞기도 했다. 키도 작은 주제에 가장 뒷자리에 앉아 장정일의 책을 읽었더랬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갑수는 그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