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휴가 2일차

Keaton Kim 2018. 3. 26. 02:39

 

 

 

# 85. 휴가 2일차

  

 

 

다들 어제 늦게까지 술 마신 것 치고는 일찍 일어났다. 집으로 와서 아이들을 깨우고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개락당으로 간다. 아침은 진수성찬이다. 물메기탕과 갓김치가 맛났다. 오랜만에 제대로 먹는 집밥이다. 느긋하게 봉화마을이라도 다녀올까 싶었는데, 아이들이 바쁘다. 산이는 친구 만나러 간다고, 들이는 수련회 장기자랑 연습으로 나가야 된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밥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니 노곤함이 밀려온다.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나는 집에서 다시 잠이 든다.

 

 

 

아내와 강이가 돌아오고, 강이에게 자전거 타러 나가자고 하니 신나한다. 집에서 늘 휴대폰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는 심심해서 그런거다. 같이 할 수 있는 놀이가 있으면 아이는 휴대폰 게임보다 훨씬 즐거워한다.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터넷 뉴스 보는 것보다 산책이 훨씬 좋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 갈거냐고 아이가 물어본다. 그냥 아빠 따라 오라고 말한다.

 

 

 

논길을 지나고 개천을 건너고 사오십분을 달려간 곳은 시 외곽에 있는 달빛책방. 우리 동네에도 책도 팔고 차도 마시고 독서토론도 하고 캘리그라피며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작은 책방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어떤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차, 일요일이라 역시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그 동네를 아이와 함께 산책한다. 뒤로 나오니 강이가 "어, 내가 있어요." 한다. 그래 강이 있구나. 낙동강이라고 알려주니 이게 낙동강이에요? 라고 하며 신기해 한다. 강이의 게임 아이디가 '우리집 뒷강 낙동강'이다. 이 동네, 참 오랜만이다. 고등학교 이후로 첨 와보는 것 같다. 유유히 흐르는 넓은 강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진다.

 

 

 

놀이터에서 꺼꾸리도 하고 놀다보니 아이도 나도 배가 고프다. 뭘 먹을까 궁리하다 밀면으로 정한다. 마침 들이게게 전화가 와서 엄마랑 밀면집으로 오라고 한다. 강이랑은 맞바람을 맞으며 다시 시골길을 달린다. 식당에 도착하니 다섯시. 세시에 집을 나왔으니 어영어영 두 시간을 자전거로 드라이브 한 셈이다. 밀면 곱배기를 시켜 맛나게 먹는다. 주인 형님은 1년 전쯤 뇌출혈으로 쓰러져 큰 고비를 넘겼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털털 웃는 모습이 예전의 모습이라 나도 마음이 좋아진다.

 

 

 

어제 오빠야 신을 사주니 자기 것도 사 달랜다. 들이야 신도 많이 낡았다. 낡은 건지 안 빨아서 더러워 진 건지 잘 모르겠다만. 그래 잠깐 쉬었다 신 사러 가자. 집으로 돌아와 잠깐 잤다. 정말 잠깐 잤는데..... 들이가 11시랜다. 이런. 다섯 시간을 넘게 자버렸다. 아이고, 들이야 미안해.... 라고 하니 딱 그럴 줄 알았다고 들이야가 웃으며 말한다.

 

 

 

와인을 한잔 따르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요즘 책읽기 글쓰기 모두 소홀했다. 준공을 앞두고 현장 막판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번 현장은 왠지 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야 있었겠지만. 쉬는 기간 동안 얼마나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휴가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