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트레킹
고속버스 안에서 틀어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무슨 '순례' 라고 하는데, 미국의 무지하게 긴 트레킹 코스를 순례하듯 횡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인터뷰이들이 주로 하는 말은 '춥고 배고프다'였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사람 꼴이 아니게 보였고 고통스러워 보였으나 그들의 눈빛은 형형했다.
어디서 본 장면이다 싶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남루하고 비굴하고 상처 받았던 어느 여인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트레킹 코스에 도전하여 슬픔을 극복하고 치유한다는 스토리였다. 찾아보니 '와일드' 라는 영화다.
그 다큐멘타리에 나오는 트레킹은 PCT (Pacific Crest Trail) 이라는 코스로 맨 아래 멕시코 국경에서 출발하여 캐나다에 이르는 미국 서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4300Km의 도보길이다. 사막, 화산, 산맥, 원시림, 고산지대 등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극한의 자연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순례길로 종주 기간 6개월이 소요되는 악마의 코스라고 한다. 매년 도전자가 넘쳐나지만 육체의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예기치 못한 자연 재해로 완주하는 이가 채 20%가 되지 않는 극한의 트레킹 코스이다.
걸어보고 싶은 곳이 많다. 작가 정유정도 갔다온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요즘 많이 대중화되어 아는 지인들도 몇몇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워낙 유명하고 다녀온 이들도 많다. 네팔의 무스탕 왕국도 걷고 싶고, 인도 라다크의 주도 레와 카슈미르 지방의 일명 죽음의 도로라 불리는 조질라 패스도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곳이다.
다큐멘타리에 나오는 순례길을 떠난 많은 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설레였다. 아~ 아직도 가슴이 설레였다. 떠나고자 하는 열정이 아직 내 안에 있음을 느끼고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