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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막내와의 한 판 승부

 

 

 

# 20. 막내와의 한 판 승부

 

 

 

사건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돼지 저금통을 사주며,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깨서 사고 싶은 걸 사기로 약속했습니다. 좋은 취지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 사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머가 사고 싶은데?"

"전동 킥보드요"

 

 

"탈 수 있겠나? 위험 안하나?"

"에이, 충분히 타죠!"

 

 

"얼만데?"

"옥션에 33만원요"

 

 

"돼지 저금통엔 얼마 있는데?"

"음, 오만원짜리랑.... 이십 몇 만원 되겠는데요."

 

 

"그럼 모지란다 아이가?"

"엄마가 빌려 주기로 했어요. 추석 용돈 받으면 갚을 거에요."

 

 

 

문제는 돼지 저금통에 돈을 모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과 초등학교 5학년이 타기에는 무지 위험해 보이는 물건을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근데, 약속한 것이 있어 어물쩡 하는 사이에 이미 돼지 배를 땄습니다.

 

 

 

"아빠, 26만 7천원이에요. 사주세요!"

"강아, 꼭 사야 되겠니?"

"저금통에 돈을 모으면 내가 사고 싶은 거 사주기로 약속 했잖아요!"

 

 

 

막내는 형과 누나와는 달리 꾸준함이 별로 없습니다. 얼마 전에 사준 스케이트 보드도 몇 번 타더니 요즘은 시큰둥 해진 것 같고, 거금을 주고 산 섹소폰도 요즘은 연습하는 꼬라지를 못 봤습니다. 아내의 동의를 구하려고 그 얘기를 했더니 평일에는 연습을 한댑니다. 하는 데 한다는 건지 안 하는데 한다는 건지, 원.

 

 

 

"안 돼. 아빠가 볼 땐 아무리 니가 모은 돈이라고 하지만, 몇 번 타지 않고 또 금방 싫증낼 게 뻔해. 그러기엔 너무 비싼 장난감이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한바탕 사단이 날 것 같아 참았습니다. 주말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겼는데, 급기야 오늘 오후에 전화를 해서 신청 안하냐고 졸라댔습니다. 업무 중이라는 말이 아이한테는 안 통했습니다.

 

 

 

한 번 꽂히면 기어이 자신을 뜻을 관철시키고야 마는 아이의 더러븐 성미가 나왔습니다. 전화가 4번 왔습니다. 이건 뭐, 빚쟁이 신세도 아니고. 인터넷에 뒤져 보니 아이가 찾았다는 그 제품은 배송 문제로 신청자의 성화가 빗발치는 제품이었고, 제대로 탈 만한 것은 그보다 훨씬 고가였습니다. 결국 41만원짜리를 골랐습니다. 클릭하는 손이 떨렸습니다.

 

 

 

애초에 돈이 덜 모였으니,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아내는 거의 막내 편입니다. 그래서 아이와의 다툼이 부부의 다툼으로 쉽게 옮겨갈 가능성이 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정적인 부담은 모두 가장의 몫입니다. 아이들고 아내도 도깨비 방망이인 줄 압니다. 그걸 벌려고 회사에서 얼마나 발버둥을 치는 지 식구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 서운합니다.

 

 

 

오늘도 별을 보며 터벅터벅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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