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사표 수리
< 가난貧 - 정약용 >
안빈낙도 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이 안 되네.
아내의 한숨 소리에 그만 체통이 꺾이고,
굶주린 자식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매년 한 번씩은 그만둔다는 얘기를 꺼낸다. 사표의 최종 결재자는 아내다. 이게 수리가 안된다. 올 가을에도 사표를 아내에게 제출했더랬다.
"이기, 미친나!"
아내의 반응이다. 아이들도 이제 머리가 컸다고, 아빠 그만두면 안되겠냐고 물으면 그럼 돈은 누가 벌어요? 라고 되묻는다. 엄니한테 일이 하기 싫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아이 셋 아버지가 할 소리냐? 며 핀잔을 주신다. 매달 받는 새경에 딱 맞추어진 씀씀이는 이제 너무 커졌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지금 받는 새경을 다른 일로 받기에는 불가능이다.
가볍게 가볍게 살자고 그렇게 애썼건만, 이래저래 어깨에 매달린 건 주렁주렁이다. 다산 선생도 안빈낙도 하려고 했지만, 가난에 체통이 무너진다고 하셨는데, 나같은 범부야 오죽하랴.
하지만, 주는 새경에 그저 만족하며 밥이나 한 술 뜨는 생활에 만족하며 살 수는 없다. 아버지, 가장, 아들, 장손의 삶도 있지만, 나의 삶도 있다. 밥벌이를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20년을 달려왔으니, 한 일년 정도 나에게 안식년을 주자는 거다. 그래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나만의 생각이라 문제이긴 하지만.)
다행히 요즘 아내는 돈 버는 재미가 생긴 모양이다. 아내의 공방을 처음 지었을 땐 사실 별로 기대는 안했다. 아주 비싼 놀이터를 지었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 근데, 그게 조금씩 벌이가 되는 모양새다. 내년 쯤 되어 공방이 제법 자리를 잡으면, 미뤘던 사표를 아내에게 슬쩍 제출해 볼 요량이다. 수리가 될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