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필사한 문장들
몹시도 상쾌한 저녁이다. 이런 때는 온몸이 하나의 감각기관이 되어 모든 땀구멍으로 기쁨을 들어마신다.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자연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날씨는 다소 싸늘한 데다 구름이 끼고 바람까지 불지만 셔츠만 입은 채 돌이 많은 호숫가를 거닐어본다. 특별히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없으나 모든 자연현상들이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혼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가는 저자가 본 일상의 자연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p.196)
고비(Gobi)는 그렇게 '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럼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곳에 뭘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곳에 가면 무얼 하면 좋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사람은 무얼 해야 할까' 이런 불온한 질문이 가슴에서 뭉클거린다면 서둘러 짐을 꾸러 고비로 날아가야 한다.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이 고비 사막에 가는 이유
이시백 이한구 <당신에게 몽골> p.23
보슬비가 오면 정확히 기단 아래로 마당이 고요히 젖어 들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저녁이면 고고히 안에서부터 빛을 내며 창문들이 서 있다. 장마가 오면 심장이 울릴 정도로 큰 빗소리가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겨울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마당 하나로 흰 눈이 가득했다. 잭 키츠의 그림 동화 <눈 오는 날>의 피터처럼 우리들은 신나게 나가 눈을 치며 놀았다.
우리 한옥은 이런 것이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한옥, 구경> p.15
당연한 이야기지만 딜런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해서 딜런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딜런이 종일 지내는 장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뼈아프게 후회한다. 학교의 학업 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 데 (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모라는 사람이 진짜 해야될 일.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p.309
이 세상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빌어먹을 멍청한 신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신은 공평함과 불공평함의 개념이 있는 걸까? 신은 간단한 대차대조표조차도 읽지 못하는 걸까? 마넥이 만났던 하녀, 뉴델리에서 죽은 수천 명의 시크교도들, 그리고 손목에서 빠지지 않는 카라를 차고 있던 불쌍한 택시 운전사에게 생긴 일들을 볼 때, 신이 회사의 경영자였다면 오래전에 해고 됐을 것이다.
이 제멋대로인 세상에 대한 주인공의 한탄. 그러나 이것 또한 적절한 균형
로힌턴 미스트리 <적절한 균형> p.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