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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산이에게

 

 

 

# 60. 산이에게

 

  

 

"산아, 엄마 오셨나?"

"에이, 엄마가 벌써 오셨겠어요? 엄마 얼굴 본 지 오래에요."

 

 

"밥은 잘 묵고 댕기나?"

"머, 그냥 그럭저럭요."

 

 

"별 일은 없고?"

"아빠가 안 오니까 집이 엉망이에요."

 

 

 

요즘 아내의 귀가 시간이 늦나 봅니다. 매주 한 번씩 만나는 주말부부였을 때도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 월말부부가 되었으니 아내는 날개를 단 걸까요? 그렇다고 아내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밥벌이 한다고 늘 가족과 떨어져 있는 아빠인데요. 뭐 그런 아빠니 엄마를 뭐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교육은 부모가 좋은 낯빛을 보이는 거라 배웠습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라는 말보다 그저 좋은 모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여 아이를 믿고 가능한 한 스스로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런 양육 방식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한창 사춘기의 시기임에도 별다른 문제없이 씩씩하게 자라주었습니다.

 

 

 

저번 주에 큰 녀석이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물론 아빠를 보러 온게 아니라 서울 사는 여친을 만나러 왔다가 들른 겁니다. 가족이 다 있을 땐 몰랐는데, 막상 둘만 있으니 좀 서먹하기도 했습니다. 하긴 중3 머슴애와 무뚝뚝한 아빠의 조합이 조잘조잘 하하호호가 될 리는 없겠지만요.

 

 

 

산이가 내려가고 나서 칭찬을 못해준 게 못내 아쉬웠습니다. 우리집 대표로 집안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서울에 있는 아빠를 대신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제사도 지내고, 친구들과 운동도 열심히 해서 전국대회 출전권도 따내고, 자기 일은 스스로 잘 하는 대견한 녀석인데, 그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하려니 쑥스러웠습니다.

 

 

 

제게 아이들은 언제나 그리움입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아이들과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마되지 않은 저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그리움으로 사는 시간은 곧 지나갈 겁니다. 아마 아이들은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벌써 지나가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산이한테 전화 한 통 해야겠습니다. 밥 잘 먹고 다니라고, 엄마가 밥 안 해주면 바깥의 음식을 사먹지 말고 맛나는 재료 사다가 해 먹어라고, 아빠가 재료비는 준다고, 엄마가 늦게 들어와도 타박주지 말고 수고했다고 얘기하라고, 강이랑 가끔 놀아주라고, 집이 너무 엉망이면 들이 강이를 데리고 청소 한 번 하라고, 그리고 아빠는 언제나 산이 편이라고 말해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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