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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나의 아이들

 

 

 

# 37. 나의 아이들

 

 

  

도쿄 시나가와의 한 대학 병원에서 아기를 낳았다. 다니던 개인 병원에서 산모가 너무 살이쪄서 위험하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내는 울었다. 양수가 터지고 이틀이 지나도록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고통스러워 하며 수술을 원했으나, 나는 애써 무시했다. 사흘째 산모가 거의 탈진할 때 쯤 아기가 나왔다.

 

 

 

여자 아이를 원했으나 아들이었다. 아들이라는 사실에 나도 모르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아이의 이름을 부탁드렸으나 거기서 낳았으니 알아서 지으라고 하셨다. 소설 '아리랑'의 김산이 생각났다. 그래서 '산'으로 지었다.

 

 

 

온 집안 어른들이 기뻐했고 특히 할매가 좋아했다. 증손이 몇 있었으나 모두 손녀가 낳은 딸이었는데, 손자가 낳은 아들이니 오죽 하셨으랴. 나는 집안의 장손이다. 당연히 자라면서 위 아래의 여자 형제들보다 훨씬 사랑받고 자랐으나 나는 집안에 아들이 나 하나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느낀 부담이 내 아이의 어깨를 누르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으나, 생각과 행동은 달랐다. 은연중에 너도 장손이다 라는 모습을 보였고 아이는 그걸 의식하며 자랐다. 밥벌이로 타국을 떠돌아 다닐 때도 세 아이중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딸도 막내도 아닌 첫째 '산'이었다.

 

 

 

둘째는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을 고민했다. '들'이라고 지었다. 막내가 사내아이로 태어나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매일 치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딸아이 편이다. 맛나는 것도 딸이 우선이고 서로 싸울 때도 첫째 혹은 막내를 혼낸다. 아이들이 너무 편파적이지 않느냐고 항의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산이는 나 아니라도 사랑을 줄 사람들이 주위에 널렸고 막내는 막내의 단짝인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들이는 둘째라는 핸디캡을 은연중에 지니고 있는 듯 했고, 속내를 잘 알기 힘들다. 불 같은 무언가를 지니고 있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았고,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본인도 모른다. 그 무언가를 잘 살피고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임무다.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이번엔 이름을 고민하지 않았다. '강'으로 지었다. 산이와 들이와는 많이 달랐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다. 무엇이든 잘 흡수했고 속도도 아주 빨랐으나 포기도 쉽게 했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높았고 자존심이 셌다. 당연히 자기 주장이 강했고 그것이 문제가 될 만해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도 출연했다.

 

 

 

아주 특출하게 뛰어난 점은 없지만 어떤 것이든 대체적으로 잘하는 산이에 비해 강이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에만 뛰어나다. 바꿔말하면 배워서 꼭 몸에 익혀야 하는 것들도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다. AB형의 전형적인 특질이 아이한테 나타났다.

 

 

 

한 배에서 나왔지만, 생김새만 비슷할 뿐 생각하는 방식이나 성격, 습관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남자와 여자, A형과 B형과 AB형, 첫째와 둘째와 세째.... 태어나면서 서로 달랐고 자라는 환경에 따라 더 달라지는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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