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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명절 봉투

 

 

 

# 28. 명절 봉투

 

 

  

언제나 명절이면 여러가지 준비할 것이 많다. 이번 추석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봉투를 준비한다. 어머니, 아버지, 장모님 드릴 용돈 봉투다. 아내에게도 명절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한다. 친지들 드릴 봉투도 물론 마련한다. 용돈 뿐만 아니라 백화점 상품권도 여럿 준비하고 주위에 돌릴 선물도 여러개 사 놓았다.

 

 

 

추석에 아이들이 절을 한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어차피 용돈을 줘야 하고 그 돈이 그 돈이니 기분좋게 넉넉하게 준다. 조카들도 한둘이 아니라 왠만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렇다고 생까면 모양새가 빠진다. 조무래기들은 모르겠다. 아내가 알아서 하겠지. 일단 대학생들에게만 오만원을 준다. 어른들을 모시고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당연히 장손이 내야한다.

 

 

 

추석전에 그렇게 준비한 것들을 이래저래 다 드리고 나니 지갑에 딸랑 오만원짜리 두 장이랑 백화점 상품권 한 장 남았다. 약간 서글픈 느낌이 들기도 하다. 애들은 이번 추석에 받은 용돈이 명절 기록을 갱신했다면 서로 자랑질이다. 이넘들아, 그게 다 아부지 돈이다.

 

 

 

나도 자라면서 친척들에게 용돈을 넉넉히 받았더랬다. 그땐 잘 몰랐다. 그게 다 울 부모님이 잘해서 그런 것이라는 걸. 지금 내가 부모 형제 친지들에게 드리는 것이 내가 자라면서 받은 것에 대한 보은?이라는 걸 이젠 안다.

 

 

 

나의 삶의 모토는 자발적 가난인데, 조금 덜 벌고 덜 쓰는 건데, 그래서 좀 덜 벌어도 좀 불편해도 혼자서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데. 그렇지만 명절에 이렇게나마 사람 구실 장손 구실 가장 구실을 하는 안도감과 뿌듯함도 버릴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 밥벌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명절 오고 가는 봉투속에 싹트는 가족애' 농담처럼 하는 아내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밥벌이를 버릴 이유는 몇 되지 않는데, 밥벌이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산더미처럼 많다. 명절에는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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