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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어디까지 가봤니? 울나라 건축물 3 - 내맘대로 골라골라 근대건축 20선

 

 

내맘대로 골라골라 근대건축 20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지금 보니 하품 나올 정도로 지루하더라 라는 어느 영화광의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영화는 그래서 문학에 비해 수명이 짧다는 한탄이다.

 

 

 

문학이나 그림, 조형, 영화에 비해 훨씬 복합적이고 상위 문화인 건축은......  다른 문화에 비해 실로 그 수명이 졸라 짧다. 요즘 지어지는 공구리 건물은 수명이 100년이라고 하지만 30년만 지나면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해서 허물기 일쑤다. 조금 길다 싶으면 50년 정도 아주 길어야 100년이다. 내가 지었던 몇 안되는 건물들도 어쩌면 나보다 수명이 더 짧을 수도 있다. 물론 600년이 훨씬 넘은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5000년을 자랑하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것들도 있긴 하지만....

 

 

 

 

 

영욕의 세월을 보내고 작년에 유명을 달리하신 우리집....

울 할매가 지금은 칠순이 넘으신 울 아부지를 여기서 낳았다고 하니 그 연배를 짐작한다. 얼굴도 모르는 울 할배와 요즘 가끔 생각나는 울 할매하고 울 삼촌 고모들 그리고 엄니 아부지 누나와 동생 그리고 마눌과산이와 들이가 살았던 집이다.

 

시대가 달라도 이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추억의 일부분을 공유한다. 그래서 가족이다.

 

 

 

 

 

우리나라에서 100년이 지난 혹은 그 정도의 연배가 되는 건축물을 찾아보기는 쉽진 않다. 해방 이후 하도 천대를 받고 그런 건축물들을 보전해야 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요즘은 등록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등록되고 있다.) 그렇기에 그 정도 연배의 건물을 보면 반갑다. 뭔가 근사하면서도 고풍스럽고 또 아늑하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문화재 덩어리라는 파리.. 저거 보존할라꼬 온갖 애를 쓴다는데....그래서 오래된 건물은 다 따로 관리하고 새 건물은 따로 떼어서 한데 짓고....  그나저나 나는 언제 저기 함 가볼까?? 가면 눈이 똥그래질 만큼 좋을까?

 

 

 

보통의 경우 전통건축이라 함은 우리가 늘 보아왔던 궁궐이나 절이나 혹은 양반님네의 그런 집들이다. 어찌보면 좀 일률적이기 까지 하다. 그래서 산들강이를 데리고 답사를 함 갈라치면 또 절에가여??? 그냥 집에서 LOL이나 하면 안돼여??? 하고 치를 떤다.

 

 

 

그러던게 개화가 시작되면서 양넘들이나 일본넘들이 들어와서 벽돌집도 짓고 서양식으로도 짓고 혹은 일본식으로도 짓고 해서 우리 건축이 다양화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해방전까지를 근대건축이라 부른다.

  

 

 

그럼 본격적으로 내 쪼대로 떠나는 한국의 근대건축물~~~ 가 봅시당.

 

 

 

 

 

1 약현성당 - 1892년 준공 고딕+로마네스크 양식 설계자 코스트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교회건축이자 본격적이 벽돌조 건물....

말하자면 야.... 벽돌로 예쁜 성당을 지을려면 나처럼 지으면 되야~~~~~~~

 

사실 이게 1998년에 언넘이 홧김에 불을 질러서 일부 새로 만들면서 원형에 더 가깝게 복원했다고 한다. 숭례문도 그렇고 이런 문화재에 불지르는 미친넘들은 저거또 뜨거운 맛을 봐야 

여하간...건축사적 가치는 크다고....

 

드라마 영화 촬영장으로도 많이 쓰인다는데... 내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이승기와 신민아의 고백장면에도 나왔다는....근데 그런 드라마도 있었나??

 

건축적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보려면 아래 홈페이지에 아주 상세히 나와 있다 근데 뭐하는 분이실까...

 

http://ramzy.tistory.com/23

 

 

 

 

 

2 독립문 - 준공년도 1897년 설계자 사바찐

 

 

 

 

이 독립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본래는 여기에 영은문이라는게 있었는데 이게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피곤하지요... 하면서 박카스도 주고 언니도 불러주고... 했다는...

 

그래서 청나라가 열강에게 패하자 우리도 이제 이거 조공도 안주고 언니도 안대준다! 인자 봉노릇은 안한다. 라고...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중국에서 독립하는 상징적인 건물을 세우자고....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독립문이다.

 

 

 

 

 

 

요게 영은문이다. 요 옆에 모화관 (중국을 사모하는)이라는 중국 사신 전용 붕가붕가 집이 있었다고.....

 

서재필선생이 프랑스 개선문을 보고 쓱싹쓱싹해서 사바친을 불러서 보여주고 설계를 시켰다. 그리고 거의 순수하게 백성으로부터 각출해서 지었다고 한다. 현판은 독립운동가 김가진선생이 썼는데 기공식날 병자년 정묘년 굴욕을 이제서야 깨트렸다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참고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그 전에는 영문표기로 Dogrib-mun이라고 썼다는데... 개갈비문???

 

 

 

 

 

3 중명전 - 준공년도 1897년 설계자 사바찐

 

 

 

 

! 원통하구나. ! 분하다. 우리 이천만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4천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히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구나! 동포여! 동포여!" - 장지연의 시일야 방성대곡 중에서

 

그 무엇보다 덕수궁의 중명전은 을사조약 (1905)의 체결장소이다. (일본넘들 저거 맘때로 한거니까 을사늑약이라고 불러야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이거는 졸라 부당하다고 이준이 니가 쫌 세계사람들한테 알려줘 하고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이거 땜시 빌미를 잡혀서... 일본은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황실도서관으로 러시아계 건축가 사바찐에 의해 설계된 서양식 전각으로 덕수궁 화제 이후로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중명전(이 殿이라는 말은 주로 왕실이나 이에 버금가는 건물에만 부치는 거다)으로 되었고 지금은 덕수궁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몬가봤다. 가 보기는 커녕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이런 건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 부끄럽다.

 

 

 

 

 

4 명동성당 - 준공년도 1898년 고딕양식 설계자 코스트

 

 

 

 

꽃 할배에서 나왔던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에나 스트라스부르의 노틀담 성당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역할을 한 바로 그 성당이다...

 

성당이 있는 명동 언덕은 한국 천주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 천주교 미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김범우는 이승훈 정약전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자체적으로 미사를 보았다. 포도청 당국이 이를 적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명문가 자제라서 적당히 훈방 조치했지만, 김범우는 중인 계급이라 고문을 받고 귀양을 가다가 사망했다. 이후 개화기에 조선에서 천주교가 허용되고 나서 새로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명동성당이다. 한국에 있는 고딕식 성당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최고 높이는 45m. 약현성당을 설계한 프랑스 신부코스트(Coste) 신부가 후에 명동성당을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1898년에 완성하였다. - 라고 지맘대로 백과사전인 엔하위키에 적혀있다. 헉헉...

 

근데 저거 어떤 소설에서 본 스토리인데... 기억이....조정래의 아리랑인가....

 

예전에 구매팀에 같이 있는 정대리가 여기서 결혼식을 했는데... 집에 내려간다고 몬갔다.... 지금 생각하면 건물구경도 할 겸 함 가볼걸 그랬다.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리브볼트. 천장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1950년대 중반의 명동성당 사진

 

 

 

 

 

5 공화춘 - 준공년도 1905

 

 

 

 

예전에 인천에서 근무할 때 짱깨이가 젤 처음 나왔던 집이라고 해서 인천 차이나타운도 구경할 겸 공화춘에 짜장면 먹으러 갔었다........ 우리동네 왕손짜장이 더 맛있었다.

 

2층 건물이며, 2006년에 등록문화재 246호로 지정되었다. 매우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청나라 시대의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지금 짜장면을 파는 공화춘은 예전의 그 공화춘이 아니라고... 전혀 엉뚱한 사람이 공화춘 상표로 영업하고 있고 울 나라 최초로 짜장면을 팔았다는 그 공화춘의 외손녀가 지금 신승반점인가 하는 데서 계속 선대의 가업을 잇고 있다고.....

 

 

 

 

 

굴러온 돌한테 까였다....지못미 신승반점...

 

 

 

 

 

6. 대한의원 - 준공년도 1907년 고전주의 양식 탁지부 건축소 설계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양식 병원인 광제원과 그 외 2개 병원을 통합해서 새로 만든 병원이다. 광복이후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현재는 서울대학교 의학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데 이 자리가 마두봉 언덕이라고 창경궁을 조망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라고....

 

그리고 저 시계가 울나라에서 제일루다 오래된 시계라는데...(서울역꺼보다 더 오래되었다나....) 여하간 옛날 그대로 기계식으로 복원한다고 그런다.

 

대한병원은 1900년대 초 조선은행 본관 (현 한국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현재는 철거) 과 함께 서울 3대 명물로 꼽혔다고.....

 

설계는 탁지부 건축소라고 되어 있어서... 탁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인가 싶었더마.... 호조의 역할을 했던...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기획재정부쯤 되는.... ... 무식이...쪽팔려.... 당시 관청의 설계와 감독은 여기서 담당했다는...(야바시 겐치키라는 이가 설계를 주관했다고 씌여있음...)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명물 이라고 까지 불릴 정도는 안되어 보이는데...

그 시절에는 그랬나.....

 

이게 영어를 보니까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라고 되어있는데... 머 울나라를 발전시키는 회사 이런건가... 지랄
 

 

 

 

 

7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 - 준공년도 1912년 르네상스 양식 설계 탁지부 건축소

 

 

  

 

?? 여기 우리학교네.... 첨 알았네....ㅋㅋㅋ 서울에 있는 방송통신대 별관이다. (난 부산캠퍼스 출신 ㅋ). 학교 안에 저런 고풍스런 건물이 학교 분위기를 얼마나 좋게 바꿔주는지... 학생들의 퀄리티마저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부산대 넉터의 망가진 캠프스를 보면 지금이라도 화염병을....

 

위에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적어놓았지만......  서양건축사 시간에 졸았는지... 관심이 없었던건지... 고딕이니 로마네스크 혹은 바로크니.... 사실 지금도 잘은 모른다. 그저 뾰족뾰족하면 고딕이고 좀 무식하다 싶으면 로마네스크고 화려해보이면 바로크... 머 이정도로 구분하는 정도이다. 머 무슨무슨 양식 같은게 중요하겠는가. 봐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면 그걸로 족하다.

 

 

 

 

 

참고로 성당하면 세계 모든 교회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성베드로 대성당 혹은 바티칸 대성당으로 불리는 이 곳이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작이다.

 

혹시나 서양의 건축양식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아래에 가보면 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amako05&logNo=70092772145

 

 

 

 

 

8 조선은행 - 준공년도 1912년 설계 다쯔노 긴고

 

 

 

  

지금은 한국은행의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이었다. 토쿄역을 지은이가 설계하였다. 외벽에 화강석으로 마감한 것이 위엄이 있으면서도 우아하다. 1900년 초 경성 3대 명물이라 불릴만 하다.

 

시골 촌놈이 서울와서 도심속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저 건물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을 아직도 기억한다.

 

 

 

 

 

1940년대의 모습

 

 

 

 

 

9 진해우체국 - 준공년도 1912

 

 

 

 

드디어 집 가까운 곳에 있는 근대 건물을 찾았다.... 다 서울쪽에 있는 거라 좀 삐져있었는데...

100년 된 우체국 정도 되면..... 이거 상 줘야된다... 그렇게 오래되었는데도 오래된 건물로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삘이 나는 건물인데.. 예전에 여기가 러시아 공사관이 있었다고... 군항제 가면 가보는 건물이라는데.... 하긴 최근 군항제 안가본지가.....

 

 

 

 

 

색다른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찾다보면 숨은 고수들이 참 많다머하는 넘들인가 모르겠다 완전 덕후다  내가 아직 모르는 세계가 무궁무진하다. 진해우체국에 대한 더 상세한 사진은 아래를 참조하면 되시겠다참고로 이분 완전 존경스러운 덕후님이다.

 

http://younghwan12.tistory.com/3676

 

 

 

 

 

10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 준공년도 1920년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되었던 이 건물은 해방 이후에는 부산에 진주한 미군들의 숙소로 이용되다가 1949년 미문화원으로 개원하였고 1999년에야 비로소 반환되었다. 1920년대에 세워진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서구양식이 도입될 당시의 건축 경향을 살필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자료이다. 또한 처음 지어졌을 당시부터 1999년 반환될 때까지 외세지배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기도 하다. 라고 문화재청에 씌여있다.

 

졸라 버젓이 부산에 있는 건물인데 식민지시대엔 일본 건물로 해방 후엔 미국건물로.. 그것도 돌라꼬 돌라꼬 캐서 겨우 1999년에야 돌려받았다?.....이기 머하는 기고?

 

 

 

 

 

 

그리고..... 미문화원방화사건의 바로 그 현장 맞다. 진짜 배짱있는 대학생들이 미국과 맞짱 함 떠 보겠다고 달라들었던 바로 그 사건이다..... 씨바 양키넘들아 광주때 너거는 머했노...양키고홈을 외치면서.... 좀 과격하긴 했지만...이 때부터 미국은 우리 우방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다....

 

이 사건의 변론을 맡은 변호중의 한명이 35세의 젊은 나이의 노통이었으며 최종판결을 한 대법관 중에는 이회창도 있었다. 그 당시 주범? 두명은 사형을 받고 수감 도중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데... 아직 감옥에 계신지 모르겠다. 

 

......동척. 이름이 하 이상이여 따져보니 개척할 척자에 이식할 식자를 쓴다. .. 수탈하기에 딱 맞는 이름이다. 이넘들이 토지개혁한답시고 땅도 다 뺏들어 가고 양식도 다 뺏들어간 그 넘들이다.

 

지금은 부산근대 역사관으로 쓰고 있다니 한번쯤 가 볼 일이다. 머 그리 멀지도 않고....참고사설은 하기 참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1&aid=0000036505

 

 

 

 

 

11 서울역 - 준공연도 1925년 츠카모토 야스시 설계 네오 르네상스 양식

 

 

 

 

우리 현장 마치고 본사로 발령나면 또 참 자주 봐야되는 그 곳이다. 예전에 자주 보던 시기엔 한참 복원공사한다고 가림막을 쳐 놓았던데... 아직도 노숙자 아저씨들은 많이 계시나 모르겠다..... 

 

 

 

 

 

1925 9월 완공되었다. 사진은 한창 공사중인 1924년도의 서울역이다. 설계는 일본 토쿄역을 설계하고 조선은행을 설계한 다츠노긴고의 제자인 츠카모토야스시로 알려져있다. 스위스의 루체른 역사가 모델이었다고 한다. (꽃할배의 그 루체른이다. 옛 역사는 화제로 없어졌다). 준공당시에는 그 거대한 규모와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으로 상당히 진귀한 건물이었다고.....상상해보니 정말 그렇다.

 

 

 

 

 

화제로 붕괴되기 전의 루체른 역... .... 똑같네....

 

지금은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데..... 시간되면 한번......

 

 

 

 

 

12 연희전문학교 언더우드관 - 준공연도 1925년 설계자 헨리 머피

 

 

 

 

고등학교때 단짝이 있었다. 친구는 연대가 목표 나는 고대가 목표였다 (그 시절엔 과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대학!...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래서 고2땐가 촌놈들이 서울에 캠퍼스 순례를 와서 여기 앞에서 똥폼을 잡고 사진을 찍고 그랬었다....... 결국 둘다 지방대에 갔다. 그 친구는 그것때문이었는지 졸라 똑똑했는지 대학원을 카이스트로 가더만 육사에 강사로도 가고 이름만 들으면 아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 네이버 등에서 근무했다. 내 친구중에 제일 똑똑하다.

 

 

 

 

 

일제시대의 대학건물은 대개 석조의 고딕풍 건물이었다. 최초가 사진의 왼쪽 건물 (연대 스팀슨관)이다 

 

 

 

연대를 만든 원우두 석호필의 시초이시다 의 젊은 시절에 이런 비화가 있었다고 한다.

 

1859 7 1일에 영국계 미국인으로 태어난 언더우드는 뉴욕 대학교 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하고 인도어와 의학을 배운 후 장로교 목사가 된다. 그리고 당시 영미권의 선교사들이 주로 파견되던 인도에 건너가 목회활동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듣보잡 국가에 파견할 선교사 한 명을 찾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에서의 선교활동을 결심한다.

 

그런데 당시의 약혼녀가 조선에 같이 가자는 언더우드에게 묻기를
"
그 곳에서는 무얼 먹고 살죠?"
"
모르겠소."
"
병원은 있죠?"
"
모르겠소."
열받은 약혼녀가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조선에 대해 아는 게 뭐에요?" 그러자 언더우드는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그 곳에 주님을 모르는 1000만의 민중이 살고 있다는 것 뿐이오."라는 간지폭풍의 멘트를 날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약혼녀는  당연히 (그럼 니 같으면 가겠냐???) 넘어오지 않았고, 결국 언더우드는 파혼 통보를 받고 혼자서 조선으로 향하게 된다.

 

.... .... 그랬다는 이야기다....

 

 

 

 

 

13. 조선총독부 - 준공년도 1926년 설계자 게오르그 데 랄란데 네오르네상스 양식

 

 

 

 

1929년에 찍은 사진... 씨바 웅장하다... 딱 봐도 총독부스럽다.

지을 당시만 해도 조선이 독립할 줄은 생각못해서 졸라 성의껏 잘 지었다고 한다.

 

 

 

 

 

어쩌자고 여기에 지을 생각을 했을까? 반 멍충이가 아닌 다음에야 여기에 이런 걸 지으면 엄청난 반발을 예상못하진 않았을텐데... . 영원토록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나.... 그 덕에 우리는 경복궁의 전각 대부분이 헐려 나갔다.

 

 

 

 

 

영사미 아자씨 시절인 95년부터 96년에 해체되었다. 철거 결정이 내려지고 일본에서 통째로 가지고 가께 캐서 김영사미가 그럼 아예 폭파를 해뿌고 일본넘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고 폭탄발언을 해서 지지율이 졸라 올라갔다는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돈을 들여서 이전 복원할 만큼 이 건물에 대한 가치가 없다 라는 그 때의 높은 사람들의 결론에 대해 많은 회의가 든다. 근데 철거 당시 나는 머하고 있었나... 왜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 일본에서 접시닦고 있었나?? 아니다 복학해서 정말 멍청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시나브로 잊어버리는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따로 보존해서 두고두고 보면서 역사를 기억해야 할 그런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 생각한다.

 

 

 

 

 

14 경성전기주식회사 - 준공년도 1928

 

 

 

 

1920년대 말 서울 도심부에 지은 본격적인 사무실 건물로 현재도 한국전력 사옥으로 쓰고 있다. 그럼...무려 86년 동안이나 한 회사의 사무실로?? 엄청나다도심 재개발의 광풍속에서도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온 당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초고층이니 호들갑을 떨었을텐데.... 지금은 주위의 진짜 고층건물에 가려 오히려 왜소해 보인다. 당시 권위적이고 화려한 관공서 건물에 비해 아주 세련되고 우아한 오피스건물이라는 평이다.

 

 

 

 

 

15 충청남도청 본관 - 준공년도 1932

 

 

 

 

옛날에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면서 지었다. 일제시대 관공서 건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물. 한국전쟁때는 임시정부 청사로도 사용했다고.... 세워진지 70년이 넘는, 근현대사를 겪어온 건물이다

 

 

 

  

 

 

 

현재의 우주기지 충남도청...

.... ..... 그렇다.

 

오히려 70년이 넘은 건물이 오히려 훨 나아보인다는 건... 나만 그런가....

 

 

 

 

 

16 미츠코시 경성지점 - 준공년도 1934

 

 

 

 

 시절에 이 정도의 백화점이 여기에 떡하니 있을 정도면 오히려 그때가 이동네의 전성기가 아닐까???......일본의 미츠코시 경성점으로 출발하여 해방 후에는 동화백화점 한국전쟁때는 백화점 전체가 미군의 피엑스로 쓰였다. 그 후 삼성에서 인수해서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매춘부의 기둥서방으로 사는 남자의 자폐적인 일상과 어떠한 개선의 여지도 없는 주인공의 모습이 음울하게 그려지는 이상의 소설 날개의 마지막 부분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의 장소가 여기라고.....

 

 

 

 

 

참고로.....공사한다고 땅파다가 온천이 나와서 심봤다를 외쳤다는.....뉴욕의 Macy's백화점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신세계 센텀점이다. (근데 그 Macy's 백화점에는 아직도 "THE WORLD'S LARGEST STORE" 간판이 붙어 있다고)

 

 

 

 

 

17 부민관 (구 국회의사당) - 준공년도 1935

 

 

 

 

 

 

 

일제시대의 문화 공연장인 부민관. (영어로는 Keijo Public Hall 이다. 경성을 일본어를 읽으면 케이조다) 일제 말기에는 정치집회장으로도 쓰였는데 모윤숙 이광수는 여기에서 전쟁에 협력하는 연설도 하였다.

 

그 후 빌어먹을... 현대건축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생길 때까지 여기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 에라이 똥이나 처묵어 하고 김두한이 응가를 던졌다는 전설이 바로 여기다). 현재는 서울시의회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18 조선저축은행 - 준공년도 1935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단아한 모양의 비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네오 바로크양식의 건물...이라고 문화제청이 말한다. 지금 다시 봐도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단아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80년이나 된 건물 같지 않다..... 그래서 옛날에도 저렇게 생겼나 하고 찾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건물은 별로 변한게 없다.

단지 건물의 주인 이름만이 조선저축은행 - 한국저축은행 - 한국식산은행 - 제일은행 - SC제일은행 - 한국스탠다드차타드 은행으로 영욕의 세월을 느낄 수 있다.

 

건물 내부 천정에 있는 꽃모양 석고 부조가 근대 건축양식의 걸작이라고 표현이 되어서 찾아보니.... 사진은 많은데 당겨 올 수가 없다. 분하다... 그게 뭐 기밀문서라고.... 참 정리가 잘 되어있고 좋은 사진이 많고 문화재청 버금가게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까페나 블로그가 많은데 사진이 공유가 안된다. 좀 안타깝다. 그렇담... 한번가서 꼭 찍어야지.

 

 

 

 

 

19 보성전문학교 본관 (현 고려대학교 본관) - 준공년도 1937년 설계자 박동진 고딕양식

 

 

 

 

고등학교 시절에 이 학교 건물 사진을 방 한켠에 붙여놓고 있었다대학교의 캠퍼스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대학건물이라함은 이렇게 생겨야 한다고.....

 

이 당시에는 건물이 웅장하고 내외부의 장식도 화려하여 대학건물로는 더없이 훌륭했다고 한다. 지금봐도 훌륭하다.

 

한때 정주영 회장이 가출해서 노가다시절에 이 건물 짓는데 등짐을 날랐다고.. 그래서 자주 고대를 자신이 지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고 싶어서 재수까지 하였는데 결국 지방대학교에 갔다. 재수시절부터 군대 일본 어학연수 그리고 정말 마지못해 학교를 다니던 95년까지 돌이켜보면 내 청춘의 암흑기였다. 인생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그 시절에 이 학교를 들어갔다면 내 인생이 많이 달려졌을까? 지금의 내 대답은 아니오 이다.

 

 

 

 

 

본관건물과 함께 고대를 상징하는 중앙도서관 (현 대학원도서관) 이 역시 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지을 당시 듀크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을 본따서 지었다고 한다. (아래사진이 듀크대학교 중앙도서관이다.) 

 

 

 

 

 

 

  

 

 

 

20 적산가옥

 

 

 

 

초등학교 사학년땐가 오학년땐가 가출을 했었다. 울 엄니 얘기로는 자전거를 안 사줘서 가출했다고 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냥 가출이 뭔지 함 해보고 싶어서 한 것 같다. 여하간 막상 가출을 해보니 갈데도 없고 해서 결국 간 곳이 마산 큰 이모댁이다. 그 때만해도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되는 길인데....

 

여하간... 그 때의 이모집은 집 터도 굉장히 넓고 나무도 많고 유리로 된 창도 많았고...방에서 문을 열면 또 방이고 뭐 그런 구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적산가옥이었다.

 

 

 

 

 

적산가옥이라고 해서 빨간건가?? 머지??  그냥 막연히 일본집이라고는 생각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그 의미를 따져보니 적들이 지은 집이래서 적산가옥이다. 이름이 흠좀무하다.

 

위 사진은 대전 선화동 사범부속학교 교장 사택으로 가장 오래된 주택가운데 하나로 등록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청 홈피에서 퍼왔다.

 

 

 

 

 

아직도 시계가 거꾸로 흘러 갈듯한 저 동네에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뭔가 아련하다. 사진은 구룡포의 적산가옥 거리이다.

 

 

 

 

 

이것 또한 역사의 흔적이며 우리의 문화이다. 현재 인천 중구, 군산, 충남 강경, 경북 구룡포 부산 등지에 많이 남아 있으며 군산이나 구룡포에는 보존의 목적으로 남겨진 것도 있다.

 

 

 

 

 

 

 

 

사진은 군산 신흥동에 위치한 것으로 영화 타짜에서 주인공이 밑장빼기를 배우던 곳이다.

 

 

 

정말 내 맘대로 근대 건축물 20개를 골라봤다. 사진을 찾고 자료를 준비하면서 건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부끄러웠고 또한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근대 건축물은 우리 역사와 떨어져서는 이해가 완벽할 수 없기에 건축에 대한 공부 뿐 아니라 근대사에 대한 공부까지 병행할 수 있어 더 값어치 있는 시간이 되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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