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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어디까지 가봤니? 울나라 건축물 5 - 찾아보고 싶은 한국의 건축가 10인

 

 

 

찾아보고 싶은 한국의 건축가 10

 

 

 

 

 

 

 

 

 

 

 

좋은 건축이란 어떤 걸까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종로타워처럼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외형을 가진 건축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런게 좋은 건축은 아닌가 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살기 편하다며 몰려가는 타워팰리스 같은 건물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르 고르뷔지에라는 양반이 있습니다. 건축학도 혹은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인데요뭐 현대건축의 아부지…. 혹은 미스 반데로에와 발터 그로피우스등과 함께 현대 건축의 3대 거장 등으로 불리는 아자씨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건축학도가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건물 순위에서 항상 일등을 하는 롱샹 교회고, 바로 위의 사진은, 현대 건축을 공부하자면 가장 먼저 나오는 (요새는 레고로도 등장했다능…..) 빌라 사보아입니다. 이 건물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가 주장했던 현대건축의 5원칙이 잘 드러나 있는 건물이기 때문인데요

 

 

 

 

 

1층의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길고 좁은 띠 유리창, 옥상정원….. 지금 보면 뭐 별거 아닌 것 처럼 느껴집니다만 그 시절만해도 무릎을 칠 만큼 획기적이었다는데요대학교 건축의장 시간에 뜻도 모르고 막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생각한 좋은이란 아마도 기능에 충실하고 사용하기가 편한으로 해석되어 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스위에서는 지폐에서도 그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건축가를 한번 만나보려 합니다. 건축가란 단순히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정기용 선생님은 건축가란 시대를 걱정하고 시대의 모순을 고민하며 새로운 문화를 생산해 내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은 건축가는 좋은 건물을 짓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건축가와 그가 만든 건축물을 살펴보면 어쩌면 좋은 건축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1. 김중업 (1922 ~ 1988)

 

 

 

김수근은 섬세하고 김중업은 호방했다. 대표작인 공간사옥(1977)과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2)만 봐도 그렇다. 건축 스타일은 달랐지만 둘은 한국 1세대 건축가로서 개발시대를 주도한 거장이다. 하지만 김중업은 늘 김수근 이름 뒤에 따라온다. 사교적인 김수근은 괴팍한 김중업과 달리 제자를 많이 길러내 사후에도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타협할 줄 알았던 김수근과 다르게 김중업은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입바른 소리를 하다 49세이던 1971년부터 8년간 해외 추방을 당했다. 건축가로서 가장 왕성했을 시기다.- 동아일보 기사

 

 

 

 

하여간 부시고 다시 짓는데는 도가 튼 한국…. 에이 썩을 넘들…. 이런거 좀 보존하면 안되나….  처음 사진으로 이 건물을 봤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건축언어의 유희라 불리우는 제주대학 본관

 

 

 

 

위의 기사는 김중업 선생의 일면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젊었을 때 르 고르뷔지에 사무소에서 공부와 일을 했고 프랑스 유학파(?)라 그런지 그의 작품들은 뭔가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부산대 본관, 서강대 본관, 건국대 도서관 등이 초기 작품이며 한국 현대 건축의 원점이라는 찬사를 받는 프랑스 대사관[최고의 현대건축 2], 제주대 본관, 서산부인과, 삼일빌딩[최고의 현대건축 11] 그리고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문 등을 설계하였습니다.

 

 

 

 

 

풍요로운 곡선이 눈에 띄는 서산부인과 건물 (현재는 새한빌딩)  “일본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식된 여태까지의 근대건축이 서구로부터 직접 수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중업 특유의 웅장한 지붕이 돋보이는 구 이탈리아 대사관 (이경호 주택)

 

 

 

 

 

서강대 본관. 김중업 선생 왈 (골비제 형)의 영향에서 하루바삐 빠져 나와 혼자의 힘으로 걷고 싶어하던 처절한 시절의 작품이다. 구석구석에 아직도 그의 언어가 두서없이 엿보임도 당연한 일이리라"

 

 

 

 

 

올림픽 공원의 평화의 문. 김중업 선생은 별로 하기 싫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해서 제출했다. 근데 높은 넘들이 졸라 작다고  지랄들을 했다. 명색이 올림픽 기념인데.... 선생 열 받았다. 조뙈바라 이넘들!!! 30층 높이로 다시 그렸다. 높은 넘들, 또 높다고 쌩 지랄들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능.....  머 그런 시절이 있었댄다.... 

 

 

 

 

 

 

 

 

아름다운 우리 현대 건축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처마 닮은 지붕의, 바로 그 프랑스 대사관이다.

 

 

 

 

 

 

그리고 부산대 본관 (현재는 인문관. 김중업 선생의 첫 작품. 아직 현역.. 그리고 언제까지나 현역이길 바라는……) 이거는 좀 자세한 설명을 하고 싶은데요아마도 저에게는 가장 친숙한 건물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한장의 사진으로만 소개하기가 좀 머해서…. 아래 블로그에 가시면 이 건물의, 김중업 선생의 작품세계를 살짝 엿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http://blog.daum.net/cjlim-991018/247564

 

 

 

 

 

 

 

 

얼마전에 김중업 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건축가를 기리는 박물관이 울나라에 생긴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1953년 그가 지었던 유유제약 공장건물과 부지를 안양시가 사들여 안양 예술공원을 만들었는데요, 그 안에 있는 박물관은 그렇기에 더 뜻 깊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양군수 아들로 태어나 건축계의 거장으로 삶을 다할 때까지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 하니 꼭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2. 김수근 (1931 ~ 1986)

 

 

 

“김수근은 대한민국의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잡지 발행인이기도 했고 예술가들의 후원자이었다. 김중업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 건축 1세대로 평가받으며, 한국건축사에서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한국문화에 대한 지원으로 인해, 그는 1977년 미국의 잡지 타임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후원가인 로렌초 데 메디치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 위키백과에서

 

 

 

 

잠실 종합운동장의 설계 총 책임자이자 주 경기장을 직접 설계하였다. 한국적인 선을 잘 살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 분이 김수근 선생입니다. 박수근과 헷갈리시는 분도 계신데 그 분은 빨래터라는 그림을 그리신 화가입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해서 교수로 재직중인 김중업 선생을 잠깐 만나지만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남산에 새로운 국회의사당을 짓는 공모에서 1등을 하면서 국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 계획은 516으로 백지화 되고 결국 여의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금의 국회의사당이 생깁니다.)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보담은 훨 나아 보이는데……

 

 

 

 

 

국립진주박물관. 예전에 갔을 때 건물이 좀 독특했다는 느낌이 기억난다. 특히 지붕이…..

 

 

 

 

 

박물관이라기 보다 그냥 별장 같은 국립청주박물관. 기와의 느낌을 잘 살린 지붕과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그냥 살포시 내려 앉은 것 같은…. 가 보고 싶은 곳…..

 

 

 

 

 

마산 양덕성당

 

 

 

 

 

서울법원 종합청사

 

 

 

 

이후 1961년에 김수근 건축사무소를 설립(공간 그룹의 전신)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국립부여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세운상가, 자신의 사무소 건물인 공간사옥[최고의 현대건축 1] 양덕성당 불광동성당 경동교회[최고의 현대건축 4] 남영동 대공분실 정동 MBC사옥(현 경향신문 사옥), 말년의 작품으로는 올림픽주경기장 서울법원 게이트타워 등 200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 일본 신사와 닮았다고 졸라 까였음. 정문의 모양이 일본 도리이를 닮았다고 더 까였음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은 곳, 또 근태형님이 이근안이 한테 졸라 다구리 당한 곳이기도 한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자체가 고문에 최적화 되어있다고…. 이 건물은 김수근 선생의 수치이자 한국 근대건축의 수치이기도 하다고….

 

 

 

 

 

김수근 선생의 마지막 작품인 서울역 앞 게이트 타워. 유선형의 외관 스타일이 돋보인다.

 

 

 

 

건축가로서의 사명감, 자연과 인간의 조화, 전통과 현대에 대한 고민 등으로 한국건축의 정체성을 모색했던 인물 <세계일보의 김수근에 대한 평>

 

 

 

박정희 정권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왜색논란, 그리고 관변 건축가로서의 비판도 받고 있지만 건축에 우리의 전통을 담아내려는 노력 그리고 후진양성과 무엇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방면의 문화를 후원하고 발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 건축의 메카라고 불리웠던 공간사옥. 몇십년 동안(그리고 지금도) 최고의 건축으로 꼽히는 건물이다. 한국의 대표 건축잡지 Space도 발간하기도 하고 지하의 문화공간을 개방하여 여러가지 문화 공연을 후원하였다. 공옥진여사의 춤과 김덕수의 사물놀이도 여기서 탄생하였다. 지금은 아쉽게도 망하고 사옥도 어디엔가로 팔렸다고 들었다.

 

 

 

 

김중업 선생과 김수근 선생의 인연과 애증(?)의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심심하시면 한번….

 

http://blog.daum.net/minkc88/145

 

 

 

 

 

 

 

 

3. 정기용 (1945 ~ 2011)

 

 

 

 

 

 

 

할매요

면사무소 지을라 카는데요머 필요한 거 없능교

말라꼬 쌩돈 디리가매 면사무소 질라 카는데…. 고마 짓지 마라

그래도 할매요…. 말 쫌 해보이소필요한 거 있으모

지 줄끼가

예 그라지예

그라모 목욕탕이나 하나 지도목욕 함 할라카모 차 대절해가 대전까지 가야 된다

“………”

 

 

 

그래서 면사무소에 목욕탕이 있는(세계에서 유일한?) 무주군 안성면사무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선생이 직접 목욕을 하시고 나오시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도 한번 가 볼 계획입니다. 목욕하러….

 

 

 

 

 

 

할매는 이 냥반이 머하는 냥반인지 모른다…. 목욕탕을 이용하는 동네 어르신들은 건물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 신경도 안쓴다. 건물을 지은 사람도 할매들이 신경 안 쓰는 것에 전혀 신경 안 쓴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한 장면

 

 

 

 

무주 공설운동장이 있습니다. 무슨 행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수가 왜 안나오세여? 하고 물었더니 어느 할배 왈 너거뜰은 본부석에서 그늘 밑에 앉아 있는데 우리는 오데 햇볕 피할 데도 엄는데 니 같으면 오겠냐???” 군수가 깨달은 바가 있어 정기용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등나무 공설운동장입니다.

 

 

 

 

 

지금도 허공을 허우적대는 등나무가 스탠드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나무가 몸을 뻗어 세상에 자라나는 것을 보는 일은 그래서 행복하다. 그 그늘 밑에 앉아 등꽃향기를 맡으며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 정기용

 

 

 

 

무주에는 스키장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무주에는 정기용 선생이 10년간 주민들과 호흡하며 관청의 사람들과 싸우고 고민한 그래서 완성된 마을들이 있습니다. 공공의 건축을 어떻게 지어야 되나…. 하는 선생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감응의 건축>은 지은이 정기용씨가 1996년부터 10년간 무주에서 했던 공공건축 활동에 대한 기록이자 ‘오래된 농촌에서 어떻게 건축을 해야 하는가’란 고민의 흔적이다. 새롭게 만난 풀과 나무에 대한 애정과 정적이 감도는 청소년수련관에 대한 아쉬움도 엿보인다. 문제도 무주에, 해법도 결국 무주의 땅과 사람들에게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지은이는 공공건축에 관여하는 공무원들이 이 책에 ‘감응’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신문 박현정 기자

 

 

 

 

197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하고 1972년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파리 장식미술학교 실내건축과와 파리 제6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1982년 프랑스 제8대학 도시계획과를 졸업했다. 1975~85년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 및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했으며, 귀국한 뒤인 1986년에 기용건축을 설립했다. – 다음 백과사전

 

 

 

 

김중업 선생과 김수근 선생이 현대 건축가 1세대이라고 한다면 정기용 선생은 2세대 건축가입니다. 건축계의 이방인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기적의 도서관, 노대통령 봉화마을 사저 등으로 알려진 건축가입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기적의 도서관[순천, 정읍, 서귀포, 진해, 제주 김해]과 김제 지평선 중고등학교, 진주 동명 중고등학교, 영월 구인헌, 춘천 자두나무집, 무주의 많은 공공건물[무주군청 포함], 파주 은하출판사, 파주 열림원, 코리아나 아트센터, 봉화마을 사저와 추모의 집 등이 있습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김해 기적의 도서관 내부…. 우리동네에 있는데도 아직 못가봤다….. 부끄럽다. 얼른 가보고 싶다….

 

 

 

 

기적의 도서관 자료를 좀 더 보고 싶은 분은 아래로 가심 되겠다.

 

http://blog.hani.co.kr/blog_lib/contents_view.html?BLOG_ID=bonbon&log_no=35180

 

 

 

 

 

 

 

 

지평선 고등학교 ?? 이름이 지평선 고등학교?? 전북 김제에 있는 대안학교.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정기용 선생이 설계했다고 잘 지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보기가 좋았다.

 

 

 

 

 

시간이 머무는 집 자두나무 집 <말하는 건축가> 영화를 보면 상세히 나와 있다. 이 영화…. 꼭 봐야 된다. 집 짓는 일로 밥 먹고 사는 모든 사람은 봐야 한다꼭 꼭 꼭

 

 

 

 

 

파주의 열림원. 여기에 가면 승효상 선생이 정기용 선생과 그의 건축에 대한 글이 있다.

……… 비록 66세의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는 우리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 건축을 통해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승효상

 

 

 

 

그리고 봉화마을 노무현 대통령 사저입니다. 여기는 사진 한 두장으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목이 매어서…… 아래의 글은 사저가 완공되고 언론이 아방궁이니 쌩 지랄 염병을 할 때 정기용 선생이 봉화마을 집에 대해 쓰신 글입니다…. …..흙집이며 도시사람이 살기엔 불편한, 그러나 품위가 있고 자연과 조화로운 집 이라고 하십니다. 아 쒸….. 읽을 때 마다 울컥합니다.

 

http://cafe.daum.net/yogicflying/Cia1/117181?q=%C1%A4%B1%E2%BF%EB

 

 

 

 

 

 

 

 

무엇보다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신, 건물은 화려한 외관보다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향한 철학을 중요시한, 이 시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죽음에 이르러서 까지 몸소 보여주신 정기용 선생님.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입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참고로 그는 이미 안 계시지만 그의 저서 <서울 이야기> <사람 건축 도시> <감응의 건축> <기적의 도서관> <기억의 풍경> 를 통해서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 에서 선생을 다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4. 조건영 (1946 ~ )

 

 

 

 

아늑함, 쾌락 다 추구해도 좋은데 최소한의 불편함은 지고 살아라. 그 정도의 긴장은 있어야 그게 사는 거다

 

 

 

 

 

 

 

 

 

 

반역은 위험하고 힘들다. 상투는 안전하고 쉽다. 그러나 모든 진보는 반역으로부터 비롯했다. 반역은 역사와 사회를 머물지 않게 하는 유일한 처방이다. 바로 그 처방이 한겨레 신문의 탄생설화이다. 나는 이 탄생설화를 부호로써 형상화시키고 싶었다 조건영

 

 

 

 

조건영 선생의 건축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한겨례 사옥입니다. 투박한 형태와 낮선 색조, 값싼 재료…. 사옥마저도 한겨레답다 라고 평가받았던….

 

 

 

어느 지인이 사용하기가 좀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자 조선생 왈 아 그럼 한겨레를 삼성처럼 인간미 없이 설계해야 좋겠느냐불편해도 좀 참고, 물 새면 항아리라도 좀 갖다 놓으면 되는 거지라고 하셨다능……

 

 

 

 

 

 

대학로 JS 빌딩 (1990). 얼른 보기에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JS 빌딩은 형태 구성과 표현, 그리고 재료의 사용에서 대학로 주변의 라멘조와 벽돌조 건물들과 파격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철 파이프, 유리,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극도로 생략된 디테일과 솔직한 표현으로 외관을 군더더기 없이 경쾌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해결하였으며, 건립 당시 기존 질서에 대한 거부와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작가의 건축 자세를 보여 주는 건물로 평가받았다. - 신영훈 외, <우리 건축 100>

 

 

 

 

 

 

 

서초동 우성사옥. JS 빌딩의 버전 업. 명료한 외관과 거친 질감. 그리고 철골의 경쾌함.

 

 

 

 

1986년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도시주택 지역계획연구소 근무. 서울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이며 기산건축을 운영. JS빌딩, X플러스빌딩, 한겨레신문사 사옥 등으로 건축계 내외부의 주목을 받았으며, 건축가협회상을 수상.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건축을 통한 엘리트 건축을 추구.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주택정책을 연구하기도 했음. 주요작품으로는 불광동 근린생활시설 역삼동 주택 JS 빌딩 서초동 우성 사옥 후렛시네 사옥 한겨레신문사 사옥 송추 주택 최익수 정형외과 X플러스 빌딩 우림빌딩 서울국악예술교등학교 등이 있다. - culture.go.kr에 나와있는 선생의 프로필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옛 지명인 '두물머리'에서 이름을 따온 두물워크샵.

두 강이 만나듯 자연과 예술인의 만남을 지향하는 복합 예술공간이다.

 

두물 워크샵 설계에서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던 것은 밤나무, 물안개, 봄과 가을의 햇볕, 여름바람 등등 장소와 풍경이 갖추고 있었던 자연적인 요소였다. 나머지는 간단한 기하문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좁은 땅, 도로에 의한 사선제한, 주차대수, 건축주의 욕심, 허영, 무엇보다도 값싸고 좋으면서 빨리 지을 수 있는 안. 나는 이런 퍼즐을 잘 푸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설계를 끝마쳤다. - 조건영

 

 

 

 

인터넷에서 조건영 선생의 자료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518 당시 광주의 사진을 외신에게 알리려다 잡혀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호방하면서도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그러나 누구 못지 않게 반골기질을 가지고 계시는…. 떠도는 자료를 찾아 보면서 선생에 대한 나의 피상적인 느낌은 그저 이랬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선생의 발자취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5. 조성룡 (1944 ~ )

 

 

 

한국 현대 건축에서 가장 걸작은 어떤 건물일까?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정답은 정해져 있다. 조사에 따라 그 순위가 서로 바뀔 뿐, 최고 걸작 1위부터 3위까지는 거의 언제나 세 건물들이 독차지한다.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사옥’, 김중업 건축가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 그리고 조성룡 건축가의 ‘선유도 공원’이다.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공간사옥은 20세기 국내 건축계를 그야말로 양분하다시피 주름잡았던 최고 스타 건축가였던 김중업과 김수근의 대표작이다. 각각 1960년대와 1970년대 지어져 오랫동안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혀왔다. 반면 선유도 공원(2002) 21세기에 지어진 건물임에도 단숨에 한국 최고의 건축으로 떠오른 비교적 최근의 걸작이다. 용도가 다해 쓸모가 없어진 한강 선유도의 정수장 건물을 헐어버리지 않고 최대한 재활용해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꾼 점에서 선유도 공원은 대중들과 전문가 양쪽 모두에게 호평 받는다. –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건축 중에서

 

 

 

 

 

바로 그 선유도 공원이다. 이런 거 왜 지방에는 안 만들어 주는 거냔 말이다! 하긴 서울과는 달리 지방에는 온 천지가 다 공원 비스룸하니까…. 서울서 예쁜 아줌마 하나 꼬셔서 여기 가면 참 좋겠다……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고?? 요렇게 가면 된다. 참 친절도 하지ㅋㅋ

 

 

 

 

 

 

저는 조성룡 선생님을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처음 봤습니다. 영화에서 정기용 선생이 동대문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조성룡 선생의 인터뷰도 같이 나오는데요, 수줍어 하시며 떨어진 사람이 왈가왈가 하는 것은 변병거리 밖에 되지 않겠냐며 극도로 말씀을 꺼리십니다. 조성룡 선생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설계 공모에서 자하 하디드의 안과 마지막까지 경쟁을 펼쳤는데요……

 

 

 

 

 

당시 우리 설계팀은 4개월 동안 동대문에 아예 방을 잡아놓고 밤낮으로 동대문 일대를 지켜봤다.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이동하고 시간에 따라 어느 지역에 사람이 몰리고 빠지는지를 기록했다.

 

핵심은 패션·직물 업계에 종사하는 상인들이다. 이 상인들이 동대문 운동장 부지에 들어설 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육중한 형태로 들어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밤낮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 지역 상인들에겐 이질적이다. – 조성룡

 

 

 

 

 

DDP의 현재 모습. 이것을 설계한 자하 하디드는 동대문에 한번 와 본적이 없다고 한다. 심사위원은 멀 봤을까? 아니 주둥이로만 디자인 서울을 외친 오세후니가 이걸로 하자고 그랬다 하더라도 심사위원들이 뜯어 말렸어야 되지 않았을까동대문이라는 참으로 의미있는 곳에 좋은 건축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어쨌던 기념비 적이긴 하다. 최악의 현대건축 5위에 뽑혔다)…. 참고로 다른 설계안도 이 참에 함 찾아봤다.

 

 

 

 

 

 

 

 

 

 

조성룡 선생은 그 연세의 몇 안되는 현역입니다. 이제 70이 넘으셨는데, 이럴 땐 건축가라는 직업이 참 부럽습니다.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Top 20에 가장 많은 이름이 올라 있는 것도 조성룡 선생입니다. (선유도 공워 3, 어린이 대공원 꿈마루 13, 무등산 의재 미술관 17)

 

 

 

 

 

충남 홍성 `이응노의 집'(2011). 땅의 흐름을 최대한 살리는 자연스런 조경 위에 작게 쪼갠 집들을 올린 미술관. 사진 : 김재경 건축사진가

 

 

 

 

선생은 목적이 없이도 거닐고 싶은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른바 공공성입니다. 그래서 어느 건축가 못지 않게 공공건축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공공건축은 건축가들이 필수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 뽑은 베스트 건축 20개를 보면 공공건축이 적어요. 대부분 민간건축입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세워진 건물이 20개 중 13개인데 그 중에 공공건축이 드문 것입니다. 제가 베스트로 많이 뽑힌 것은 공공건축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들은 결국 공공건축일테니까요.

 

 

 

반면 워스트 리스트를 보면 최악의 건물 20개 중에서 13개가 공공건축입니다. 서울시청, 예술의전당, 광화문광장…, 대형 프로젝트들이고 대형 사무실들이 설계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공공건축을 발주하는 관이 건물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되는데, 꼭 욕심을 부려요. 자기 임기 안에 완성해야 한다는. 그러면 둥둥섬이 되는 겁니다. 아이디어가 없는 거죠.

 

 

 

공공건축이야말로 신경 써서 잘 만들어야 하거든요. 시민들의 세금으로 짓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관에서는 그렇게 안합니다. 턴키로 하고, 입찰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전혀 없어요. 그게 지금의 서울시청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 실린 내용입니다. 공공건축에 대해 선생이 생각하시는 바를, 그리고 우리가 어렴풋하게 느꼈던 점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시원하게 오세훈이를 비롯한 그 일당들을 까 주십니다….ㅋㅋ

 

 

 

 

 

 

 

조성룡 선생의 몇 안되는 민간 프로젝트인 경기도 용인 지앤아트 스페이스. 개인 소유이지만 어디로든 열려있는 건물이어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 건물을 즐긴다. 건축이 골목길을 만들고 그 길이 다시 마을이 된 이 특별한 건축은 건물 자체 못지않게 건물 사이사이가 만들어낸 공간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 구본준 한겨레 기자

 

 

 

 

 

올림픽 공원 내의 소마미술관. 권위적이지 않으나 답답하지 않고 주위의 풍경과 함께 건물 자체도 하나의 자연스런 풍경이 되어버린 미술관이다. 선생이 만드신 이응노 기념관 (미술관), 의재미술관과 함께 비교해서 보면 더 재미있을 듯……

 

 

 

 

 

어린이 대공원의 필수 방문코스인 꿈마루. 1968년 지어진 나상진 선생의 대표작을 리모델링 했다. 도시락 까먹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조성룡은 꿈마루를 두고 ‘리모델링(remodeling)’이 아니라 ‘리버빌리테이션(재생·rehabilitation)’이라고 규정했다. 즉 낡은 건물을 고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는 것. 그는 “재생은 친환경 측면뿐 아니라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꿈마루를 방문해보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리모델링 후의 깔끔함은 없다. 오히려 어디를 어떻게 리모델링했는지 일반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구조를 보강하거나,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방식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현재 어린이대공원 방문자센터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으면서도 과거 이 건축물이 지녔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공간 구성이 작업의 핵심이었다. – 조선일보 허성준 기자

 

 

 

 

 

 

 

위 사진은 <말하는 건축가> 처음 장면을 캡쳐한 것입니다. 두 할배가 걸어가는 장면이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생지기였던 정기용 선생이 돌아가시고 마음이 많이 허전하셨을 텐데….

 

 

 

좋은 건축, 좋은 건축가에 대한 조성룡 선생의 생각이 잘 닮겨 있는 글을 옮기면서 마무리 할까 합니다.

 

 

 

“덴마크 건축가 얀 겔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실험’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는 35년 동안 코펜하겐을 조금씩 고쳐왔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해 하나하나 바꿔나갔어요. ‘도시설계’라고 하면 거창하게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생각하는 데 신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도시를 거시적으로 설계해서는 안 되죠. 또 자기 집만 멋지게 지으려고 하지, 집과 집 사이의 공간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도 문제예요. 지역별 특성을 살리고,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남겨가며 편안한 주거환경을 만들다 보면 살기 좋은 도시가 꾸며지는 거죠.

 

 

 

 

 

 

 

6. 유걸 (1940 ~ )

 

 

 

 

 

 

한 건물에 대해서 논란이 이토록 많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서울의 상징이기도 하니까요바로 서울시청입니다. 건물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머야?? 생뚱맞게라는 것이 일반적인 감상일 것입니다. 더우기 얼마 전 조사에서 DDP를 제치고 최악의 현대건축 1위에 오르면서 더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건물을 설계하신 분이 유걸 선생입니다. 70을 훨씬 넘기셨으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신 선생은 그러나 말년에 가장 시끄러운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 논란속에서도 의외로 덤덤하고 오히려 무관심보다 그런 관심이 훨씬 더 낫다 라고 하시면서 그런 관심과 논란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현상설계공모라는 게 있습니다. 일단 관에서 요렇게 만들어라 라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거죠. 그리고 그 기준으로 틀린 것을 찾고 가장 적게 틀린 것이 1등을 하는, 건축가의 생각 그 딴거는 개무시하는, 오직 조건에 적합한 건축물을 찾는 방법입니다.

 

 

 

건축가가 그간 어떤 작업을 했고, 어떤 철학을 갖고 있고, 이번 프로젝트는 어떻게 풀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부합하는 건축물을 누가 적은 금액으로 만드나를 찾는 거죠. 결국 하나도 틀린 게 없지만 하나도 좋은 게 없는 건물들이 일률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거죠” – 유걸

 

 

 

 

 

1 : 서울시 시청사 항아리 덕수궁과 안 어울린다고 탈락

 

 

 

 

 

 

2 : 서울시 신청사 태극 : 덕수궁을 위압한다고 탈락

 

 

 

 

 

3 : 서울시 신청사 성냥갑 : 랜드마크 상징성 부족으로 탈락

 

 

 

 

 

4 : 서울시 신청사 다각형 : 머시냐 저거슨?? 탈락

 

 

 

 

서울시청사 건물은 다른 공공건축과 마찬가지로 턴키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요게 짓는 넘이 설계 시공 감리 이런 거를 다 알아서 하는 방식입니다. 상업 건물이면 몰라도 다양한 용도를 충족하고 문화적 의미가 중요한 공공건축물에서는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은 자신이 디자인하였지만 계획을 실체로 구현하는 실시 설계 단계에서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 건물이 최악의 건물로 선정되면서 무엇보다 최악의 과정이라고 평가받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건물을 끝으로 공공건축에서 이제 턴키는 없어진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서울광장이다. 시청건물이 서울광장과 연속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수평적으로 이어지는 광장 공간을 건물 내부로 들어가 수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이 그 건물의 구석구석 끝까지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목표였다” – 신청사 디자인에 대한 유걸선생의 인터뷰 중

 

 

 

최근 유걸 선생이 직접 출연한, 7년간의 서울시 신청사 건립의 속사정을 담은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이 나왔습니다. 고 정기용 선생의 이야기인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이 만든 두번째 다큐멘타리입니다. 이번 주말에 한번 보려고 합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교육공간인 강남의 밀알학교. 1996년에 완공되었고 그 후 두번의 증축공사도 모두 선생이 하셨다. 공간의 유연성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걸은 한국 건축계에서 특별한 지점에 있다. 대부분 그의 나이가 되면 중역을 맡거나 은퇴를 하지 현역 리그에서 뛰는 사람은 드물다. 비슷한 연령대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이는 조성룡 건축가가 있지만 그와는 다른 것이 유걸 건축가는 아이아크와 같이 45명 규모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한번에 1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동시 다발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속에서 그 역시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다. 그는 과거에 많이 일하지 않아서 지금 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걸은 다른 동년배 건축가에 비해서 데뷔가 늦은 편이다. 한국 건축계에서 제대로 주목을 받은 것도 1995년 밀알학교를 통해서였다. – 잡지 뮤인의 기사 중에서

 

 

 

 

 

유리와 철골 트러스로 구축된 대공간, 빛으로 가득한 실내, 노출된 구조체가 발산한는 구조미. 유걸 선생의 건축적 변곡점이 된 강변교회

 

 

 

 

 

콘도 같기도 한 배제대 기숙사 다른 학교 기숙사와는 다른 포스와 분위기로 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최근에 지어지는 대부분의 이 학교 건물들은 다 선생의 작품이다.

 

 

 

 

 

2010년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인천세계도시축전 기념관 (트라이볼)

 

 

 

 

 

 

 

“사실, 많은 분들이 건축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좋은 건축은 편안한 건축이라는 것이지요. 건축이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구속하지 않는 것 ... 그것이 가장 좋은 건축입니다. 대부분 유명 건축가의 건축을 보면 감동을 주는 건축이 많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주되 구속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예를 들면 롱샹과 같은 건축은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지만, 구속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편안한 건축이지요. 현학적으로 아시려고 하지 마시고 편안한 건축을 찾고 또 건축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유걸 선생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7. 승효상 (1952 ~ )

 

 

 

명절에 어 저거 장인어른 산소는 안 가면서 거는 우째 그리 안 빠자묵고 가노?”

 

 

 

아내가 이런 불평을 하면서도 따라 나섭니다. 명절 때나 아니면 가끔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사는 게 별 의미가 없어질 때 찾아가서 위로를 받는 곳이 있습니다. 집에서도 참 가깝습니다. 갔다 오면 마음이 좀 개운해 집니다.

 

 

 

 

 

 

…… 노통 산소입니다. 가서 인사 드리고, 봉화쌀도 좀 사고, 아이들 좋아한는 봉화빵도 사고, 새로 나온 기념품 없나 하고 좀 둘러보고, 동네 할매가 하는 포장마차에서 찌짐도 좀 묵고 오고 그럽니다.

 

 

 

이 산소를 만든 이가 승효상 선생입니다. 위를 보시면 참 쟁쟁하신 분들이 같이 참여를 했습니다. 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합니다.

 

 

 

건축은 당대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면서 완성해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견딘 것은 추억이 쌓여 아름다워지죠. 대신 처음 세워져 익숙해질 때까지의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에펠탑과 샹젤리제 없는 파리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처음 생길 때는 흉물 취급을 받았죠. 모파상은 파리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에펠탑이 보기 싫어 에펠탑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고 하고, 샹젤리제도 파리 시내를 바리캉으로 밀어놓은 것같이 흉측하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됐잖아요. 제가 주장하는 건 건물을 허물지 말고, 새로 짓지도 말고 오래된 집을 고쳐서 오래 살자, 새집보다 기억이 있는 집이 아름다우며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 좋은 집이란? 에 대한 선생의 답변. 여성동아 인터뷰 기사중에서

 

 

 

 

 

2011년 재즈피아니스트 박준오씨가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연습실을 겸한 주택인 퇴촌주택. 선생 왈 ()기능적인 집, 기분좋은 불편함이 스며있는 집

 

 

 

 

 

2010년 대전대 30주년을 맞아 만든 대전대 30주년 기념관. 일반 시민들도 즐겨 찾는다고.

 

 

 

 

 

2005년 파주 교보문고 센터. 1~2층은 유리로 마감하고 윗부분은 공중에 떠있는 느낌.

 

 

 

 

 

쇳대박물관. ?? 이런 박물관도 있었어??? 서울 종로구 동숭동 187에 자리잡은 쇳대박물관은 2003년작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자물쇠전문 박물관이다. 사면이 녹슨 철판으로 뒤덮힌 외관이 독특하다. 박물관 설계도와 모형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있다. 건축의 실용적 측면과 더불어 문화예술적 가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신영 조선일보 기자

 

 

 

 

서울대 건축과 71학번, 졸업 후에 한국 건축의 거장 김수근 선생의 '공간'에 취직했다. 광주민중항쟁 이후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 갔고, 거기에서 아돌프 로스의 '로스 하우스'에 큰 영향을 받는다. 2년 후 빈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4년 후에 김수근 선생은 승효상과 장세양 두 제자에게 공간을 맡긴다는 유언과 30억의 빚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했다. 89년도에 빚을 청산하고 독립하여 자신의 건축사무소 '이로재'를 만든다. 1990년도에 4.3그룹을 결성하는데, 당시 건축계는 학연으로 뭉쳐 있어 담론이 형성되지 않고 건전한 비판을 통한 자정기능이 상실해져 있었다. 30, 40대 건축가들이 1990 4 3일에 모여 학연을 떠난 건전한 담론의 장을 만들었다. 2년 후에 해체되었다. 승효상 선생은 이 그룹을 통해서 김수근 아류에서 자신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 엔하위키에 나와있는 승효상 선생의 이력중에서

 

 

 

숨은 이력중에서 문재인 의원과 경남고 동기인데 문과 1등 문재인 이과 1등 승효상이라고, 그리고 김수근 선생 비서를 꼬셔서 결혼하셨다능…. 그런 거짓말 같은 사실들도 처음 알았습니다.

 

 

 

선생의 대표작은 머니머니해도 수졸당[최고의 현대건축 19]인데요, 집 설계를 해주고 설계비로 유홍준 선생한테서 이로재 현판을 받은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수졸당이 그의 대표작인 이유는 그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구현한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빈자의 미학은 "호화로운 건축에서 허황되고 거짓스러운 삶이 만들어지기 십상이고, 초라한 건축에서 바르고 올곧은 심성이 길러지기가 더 쉽다"라는 그의 발상에서 나온 건축 철학이다. 그가 김수근의 사후에 김수근 건축이 아닌 자신의 건축을 하기 위해서 고민하다가 금호동 달동네에 갔을때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소유가 아닌 공동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건축적 아이디어에서 영향을 받아 빈자의 미학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 엔하위키에서 발췌

 

 

 

 

 

웰콤시티(2000) [최고의 현대건축 10] 동국대 입구역 근처에 건물이 있어서 신입생들은 가끔 와! 우리 학교 건물인가! 이쁘다! 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전혀 아님…. 광고회사 사옥임.

 

 

 

 

 

수졸당 수백당과 함께 수*당 씨리즈인 수눌당. 대변약눌(크게 잘 말하는 것이 어눌함 보다 못하다 도덕경)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참 이름은 기똥차다.

 

 

 

 

 

 

 

요건 수백당. 수육백반이 아니다. ㅋ 하얀 집이다. 건축주와 호흡이 아주 잘 맞았다고. 이런 집을 지어보는 게 꿈이다. 어쩌면 평생 남의 집만 짓다 마감할 수도……

 

 

 

 

요즘 박원순 서울시장과 코드가 잘 맞아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브랜드만 있는 있는 외국건축가 데려다가 희한한 건물만 계획해서 하마터면 정말 고담시가 되어버릴 뻔 한 단군이래 최대 사기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 같은게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서울시에다가 이런 거 쫌 해도고, 이런 거는 쫌 하지 마라, 요래 쫌 해 보자 라고 여러가지 말씀도 하시고 건의도 하시고 계시답니다.

 

 

 

 

 

 

 

 

가장 아름다운 집이란 어떤 집일까요? 라는 물음에 대한 승효상 선생의 대답을 월간잡지 마음수련의 인터뷰 기사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우리 삶을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집이죠. 똑같이 주어진 하루도 어떻게 보내느냐는 다르듯이, 어떤 사람은 별이 떠도 별을 못 보고, 해가 떠도 해를 못 봐요. 근데 건축이 그걸 근사하게 보여줄 수가 있어요. 떠오르는 해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배율로 창을 뚫고, 빗방울 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도록 처마를 낼 수 있죠. 또한 주변 집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굉장히 선하게 만들 수가 있어요. 주변 집에 군림하듯 서 있으면 자기 마음이 완악하게 되죠. 하지만 자기 분수에 맞고, 염치가 있는 집을 지으면 그게 사람을 선하게 만들죠. 그런 집은 불편해야 돼요. 그래야 사람이 생각하게 되고, 움직이고, 창조하게 되니까요. 동선도 좀 길어야 하고, 대문도 나가서 열어주고, 집이 좀 좁아야 가족끼리 지나칠 때 살결도 부딪치고 만져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불편한 집이 좋은 집이에요.”

 

 

 

 

 

 

 

8. 이일훈 (1953? ~ )

 

 

 

 

 

 

 

편하게 살기는 곧 게으르게 살기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것을 지향하면서 환경오염, 질병, 운동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는 편하게 살기라는 지형에서 나왔다. 편안한 집을 찾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집을 찾아야 한다. 건강한 집은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이지 게으르게 살게 하는 집이 아니다. 불편하게 살 줄 알아야 한다. 여름에 시원하게, 겨울에 따뜻하게 보내려는 욕구가 존재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여름에는 덥게, 겨울에는 춥게 살자. – 이일훈

 

 

 

고등학교 국어선생이 있었습니다. 지 집을 지을라고 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졸라 건축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가장 잘 지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건축가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쌤요 집 쫌 지어 주이소근데 건축가는 얼매짜리? 맺평? 라는 물음대신에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웬 선문답?? 그렇게 이메일로 자신의 꿈을 대해서 묻고 대답하고 집에 대한 생각을 또 묻고 대답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집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그 집이 잔서완석루입니다.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 김정희의 작품집에서 이름을 땄다. 이일훈 선생은 단칸방에 살더라도 당호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건축가를 골랐냐는 물음에 집주인 왈 보통 건축가의 작품 사진은 하늘에서 내려온 듯 매끈하고 윤기가 흐르는데 이일훈의 작업은 녹물이 흐르고 때가 타 있고 거칠었다. 그가 지은 집은 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과 같다고 생각했다

 

 

 

 

 

마당 - 줄넘기를 하고 체조도 하고 그렇게 운동하려 합니다. 친구들이 오면 철망에 고기를 구워 먹고, 같이 주저앉아 얘기 나누려 합니다. 아이들이 이리로 뛰어갔다 저리로 뛰어다니면 보기 좋겠습니다. 마당에 무덤처럼 때를 입혀 장식으로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귀티가 나면 가까이 하기 어렵고, 늘 손을 봐줘야 하면 편하지가 않습니다. 잔디 정원은 눈요기에 다가서 있는 것인데, 그렇게 보고 흐뭇해하기보다 몸을 움직이며 놀며 기뻐하고 즐기는 자리이고 싶습니다.

 

잔디 마당에서 줄넘기를 하면 잔디가 다 패여서 못 쓰겠지요. 줄넘기도 못하면 그 마당을 어디에다 씁니까. 마당에는 파라솔이 있기보다 궁둥이 대고 쭈그려 앉을 수 있는 돌멩이나 나무의자가 있으면 예쁘겠습니다. 마당 주변에는 봉숭아꽃과 패랭이꽃처럼 어렸을 때 동네에서 쉽게 보던 꽃이 있으면 편하게 여기겠지요. 어머니는 대추나무와 포도나무와 배나무를 심자고 합니다. 나중에 열매가 열리면 따서 먹을 수도 있고 그 자체로도 볼만하겠지요. – 집 주인이 건축가에게 이메일로 보낸 마당에 대한 생각

 

 

 

 

 

 

 

그래서 집주인과 건축가의 소통의 과정을 담은 것이 바로 위의 책이다.

 

이 책은 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집을 투자의 수단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여기며 살고자하는 이들에게도,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도, 기꺼이 추천한다.” – 다음 시소님의 블로그

 

 

 

 

바깥에서 지내는 곳을 다채롭게 만들고, 공간을 큰 덩어리로 만들기보다 쪼개고 나누어 늘리면,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채나눔' 건축론을 편다. 글맛과 입담 좋기로 유명해서 건축계 안팎에서 자주 강연자로 초대된다. 종교 건축으로 천주교 '자비의 침묵 수도원', '성 안드레아 병원 성당', 불교 '도피안사 향적당'이 있고, 지역성을 존중한 설계로 '기찻길 옆 공부방' '밝맑도서관'이 있다.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에서 친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실험했고, '가가불이' '소행주'에서는 도시의 다가구주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환경산문집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뒷산이 하하하', 건축백서 '불편을 위하여', 건축산문집 '모형 속을 걷다'를 펴냈다.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대우교수와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 교보문고에 나와 있는 이일훈 선생의 약력

 

 

 

 

 

 

 

가평의 우리안의 미래 연수원.

 

건물은 생활채, 겨울채, 여름채로 채나눔되어 있는데 한동의 건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을 여러동으로 분산하여 대지 곳곳을 배회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바닥 포장 콘크리트 판넬은 토목용 폐자재를 재활용하여 사용한 것이다. 재활용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창조의 원천'이라고 강조하였다.

지붕의 구조를 보면 목구조 위해 황토를 얹고 잔디를 식재한 전통적인 복토구조 형태이다

외벽의 황토벽돌은 현장에서 채취한 황토에 의해 만들어 졌다.

내부 마감은 목구조재면은 옻칠을 하고, 바닥 마감은 삼베에 옻칠을 한 전통적 건축술을 재현하였다. – 허정도의 도시이야기 블로그 중에서

 

 

 

 

 

이거 절이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도피안사라는 절에 있는 향적당이라는 이름의 절 건물이다. 무슨 절이 저러냐고??? 작가의 말은 이렇다. “보편적인 사찰건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 시대에 흔한 재료로, 이 시대에 적정한 절 집을 짓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누가 봐도 ‘저 절은 이 시대에 지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절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창문을 좁게 내고 천장의 빛우물을 통해 채광을 보완한 향적당 활공루 위 선방

 

 

 

 

 

이일훈 선생의 집에 대한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가불이街家不二. 집과 길은 둘이 아니며 집과 집을 연결하는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어 그것도 집의 일부분임을 강조한다. 공동체 사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충북 음성에 있는 하늘을 담은 성당 생극성당.

 

 

 

 

<행복이 가득한 집>류의 잡지를 뒤적이다 보면 은근히 부아가 난다. 그런 유의 잡지들이 말하는 행복은 광고가 말하는 행복의 모습과 닮은꼴이다. 물질의 소비만이 행복을 보장해준다. 행복을 원한다면 일단 구입해라. 는 은근히 우리 무의식을 강제한다. '부드러운 협박'이다. 여기에 손들면 끝장이다. 일단 일벌레가 돼야 하고, 할 말은 꾹꾹 가슴 속에 쟁여놓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물질이 보장해주는 안락함에 동참하려면 있는 성깔 다 죽이고 고분고분해져야지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일훈은 좀 불편해지자고 말한다. '빈자의 미학'을 역설하는 건축가 승효상도 반갑지만 '불편의 미학'을 말하는 이일훈 또한 반갑기 그지없다. – 오마이뉴스 김보일

 

 

 

 

채 나눔건축,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이일훈 선생에 대해 공부하면서 찾은 키워드입니다. 단순히 몇 개의 낱말로 선생을 표현할 수는 없겠지요. 제가 어렴풋이 느끼는 점은, 선생은 우리에게 인간답게 살려면, 그래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건축은 이러해야 된다 라고 그의 작품에서, 그의 저서에서, 그의 강연에서, 그리고 그의 삶속에서 몸소 실천하시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선생의 글을 읽고 작품을 보고 자료를 찾는 시간이 저에게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만나는 건축은 한껏 뽐내는 멋쟁이가 아니다. 여유롭지 못한 주변 동네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건축이다.  사회적 의사를 담은 건축. 이일훈의 ‘기차길 옆 공부방’은 적은 예산으로 ‘공동체 정신’과 주변 동네 사람들의 정서를 담고자 했다. 작은 땅위에 주변을 끌어 안는, 소박하지만 넉넉한 ‘품’을 가진 환영받는 ‘이웃집’을 소개한다. – 교수신문, 이일훈 선생의 인천 만석동 기차길 옆 공부방을 소개하면서.

 

 

 

 

 

 

 

9. 차운기 (1955 ~ 2001)

 

 

 

 

 

 

 

 

세상이란,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도 세상이고, 봄이 되면 나무에 움이 트고, 여름이면 푸르러 녹음을 만드는 것도 세상이지.

 

 

이 집은 본래 감나무, 대추나무가 두 그루 있었어. 이놈들이 봄 되면 움트고, 여름 되면 녹음 만들고, 가을이 되면 열매 만드는 거야.

 

 

그놈들 죽이면 되겠어? 그놈들을 살려야 되지 않은가. 그러니 집 설계가 엉망이지. 그래도 이 조그만 땅에 그놈들 살릴 수 있으면 좋지 않겠어? 주변에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어 삭막하기 그지 없는데, 집이 좀 작아지면 어떠냐?

 

 

그래도 난, 내 만든 집이 좁아져도 그 나무 보고 사는 게 좋아. 고향 같잖아? 집주인도 찬성하고 말이지.

 

 

그래서 봄 되면 꽃 피고, 움 트고, 가을 되면 먹음직스런 열매가 맺힌다는 게 난 좋고, 거기에 녹물이 흐르면 우리 늙어가면서 생기는 얼굴 주름살처럼 내 기쁜 표정, 내 노한 표정, 내 슬픈 표정...내 기쁜 표정 생겨날 때 나 또하나 즐거움을 갖지 않겠나.

 

 

친구,

 

 

난 인생은 잘 몰라도 이것이 내 살아가는 방법이네.

 

 

이 집을 오가는 사람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네. 글쎄, 내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집을 하나 만들었네.

자네가 내 생각하고 같다면 소주 한 잔 사주게."

 

 

차운기 우혁이네 집

 

 

 

 

 

 

 

 

좋은 공간이라는 것은 공간의 짜임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비싼 재료를 붙였다고 해서 공간자체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끊임없이 누드와 같은 건축작업을 추구한다. 벗었을 때 예쁜 것은 무엇인가를 입혀 놓아도 예쁘고 벗었을 때 미운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을 입혀 놓아도 밉기 때문이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건축이 훨씬 생명력이 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나의 건축작업에서 자주 쓰이는 폐자재, 고재료 등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고 사람 손길이 많이 닿으면 닿을수록 좋아질 가능성이 있어서 좋다. 나는 그 자체를 누드라고 보기 때문에 그러한 재료들을 좋아한다. 또한 자주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를 든다면 죽음에서 또다시 생명력을 갖게 된 회생된 생명력이 우리에게 엄청난 희망과 기쁨을 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차운기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들을 즐거움으로 완성했다. 너희들 맘껏 자라나 너희가 우리 나이되면 더더욱 맛이 나는 집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때 토끼풀 반지 만들어 서로 끼워주며 함박 웃어보자." – 차운기 택형이네 집

 

둥근 곡면의 지붕에 깨진 옹기 조각을 덮은 이러한 스타일은 너무나 독창적으로 한국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기에 건축계와 대중들은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소박함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존심, 그리고 폐자재를 이용한 재활용의 미덕 등에 사람들은 열광하게 되었고, 전국에 이를 따라한 주택과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게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엔하위키의 택형이네 집에 대한 해설

 

 

 

 

 

 

 

아니이런 건물이 서울에 존재한단 말이냐??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저런 골목길에??? 서촌 신교동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라퓨타에 나올 법한 건물. 어쩌면 한국의 가우디라 불릴 만 하다. 선생과 건축주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이 건물은 그의 제자 원희연 건축가가 완성하였다.

 

 

 

 

 

 

 

12라고 명명된 그 건물의 내부…. 근데 이거 머하는 건물이지??? 공동주택이라고 자료에는 나와있는데그냥 사람이 막 사는 건물로 보기엔…. 그냥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가우디의 유명한 주택 카사밀라 저리 가라다. 우리도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게 뿌듯하다.

 

 

 

 

건축이란 행위 자체를 말하기 이전에, 놓여진 상황이 어떠한 경우에도 불구하고, 건축이 환하게 밝은 표정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것은 당연히 건축가의 역할일 것이다. 왜냐하면 집의 표정이란 것이 그 집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구성원들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의 표정이 어두우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어두워지고 밝으면 그에 따라서 당연히 밝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받는 정신적 영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미처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러므로 좋은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 건축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겸손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 차운기

 

 

 

 

 

교회를 짓기로 정한 후 건축주인 목사님은 차운기에게 나중에 디자인 안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시간이 흐른 후 차운기가 건축주에게 제시한 그림은 아래와 같다.

 

 

 

 

 

 

 

 

 

 

 

 

그 왜…. 걸레스님이라고…. 유명하신…. 그 중광스님이 말년에 기거했다는 벙어리 절간. (곤지암 주택)

요즘은 이런 건물 참 흔하다. 다 수제비 집 아니면 찌짐 집이다. , 토종 주택의 원조이다.

 

 

 

 

엔하위키 백과사전에 나오는 선생의 이력은 딱 두줄입니다.

 

 

 

1955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1982년 인하공전 건축과를 졸업했다. 김중업건축연구소 등에서 실무를 배우고 1987년 아꼴건축연구소를 개소해 운영했다.

 

 

 

한국 현대건축에 그야말로 갑툭튀해서 새로운 건축을 던져놓고 요절한 건축가. 그에게 붙은 별명으로 무규칙 토종 건축가 가 있다.

 

 

 

 

 

 

 

선생에 대해서 어느 무명작가가 쓴 책이 있습니다.

<무규칙 토종 건축가 차운기를 잊지 말자> 2005년 이중용 지음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근데 오래되어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선생은 허영만의 식객에도 출연하셨습니다. 그것도 주인공으로…. (52화 참조)

 

 

 

 

 

 

 

홀연히 나타났다 정말 홀연히 사라져 버린, 그러나 그가 남긴 토종 건축, 재활용 건축, 그리고 우리 건축이라는 화두는 건축가, 혹은 꼭 건축가가 아니더라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한번쯤 돌이켜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조민석 (1966 ~ )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건축가, 한국 건축의 대들보, 차세대 건축리더, 현대적 상상의 최전선, 랜드마크 메이커,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건축가그를 수식하는 현란한 말들과 그의 이력에 나오는 수많은 수상 등 건축가 조민석은 한마디로 지금 울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건축가입니다. 이 형님 얼굴도 도시적으로 잘 생겼습니다. 한마디로 스타성도 뛰어납니다.

 

 

 

 

 

제주도의 다음 본사 스페이스 닷원[최고의 현대건축 8] 앞에서 인터뷰 중인 조민석 건축가. 한국에는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이 왜 안 나오냐는 질문에 그런 거 받아야 업적으로 쳐주는 그런 식민지적 발상은 이제 안녕~ 이라고 아주 쿨하게 얘기한다. 현재는 덩어리 연구소 <메스 스터디>라는 사무소를 운영중이다.

 

 

 

 

 

그의 대표작 부띠크 모나코 “이 계획안은 172여개의 유닛들이 49가지의 다양한 규모와 유형들로 구성되어 퍼즐처럼 맞물려 있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내·외부공간과 사적·공적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시도이다. 16,500여평의 대규모 건물에서 이러한 다양함은 방법적으로 새로운 ‘체계적인 불균질’ 을 추구하는 것이다.” – 조민석.

 

그러니까 짓는 넘은 아마도 졸라 힘들었을 거다. 2005년 분양 당시 평당 분양가 2700만원. 돈 많은 사람을 위한 돈이 있어야 지을 수 있는 건물이다.  

 

 

 

 

 

2010년 상해 엑스포의 한국관. 한국 사람들이 이거 볼라고 2시간 비행기 타고 가서 4시간 줄서서 기다렸다는 바로 그 건물이다. 사실 그때 나도 거기 갔었는데 결국 안에 몬 들어갔다. 밖에서 건물을 장식한 한글만 주구장창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의도 S 트레뉴 (사진 : 김용관) 여기 지을 때 현장에도 자주 놀러 가고 그랬는데….ㅎㅎㅎ

사진으로 보니 폼나네…. 재수형 고생많았어 저거 짓느라…….ㅎ 나에게는 추억의 건물이다.

 

 

 

 

조민석의 건축이 던져주는 시사점은 단지 형태적인 독특함, 재료의 과감함이나 발상이 신선함에 그치지 않는다. 혼성, 다원, 불균질 현대 대량생산체제에서 그가 시도하는 건축의 키워드다. 그는 현대 한국 사회와 도시를 가장 최전선에서 탐구하고 유희를 만들어내는 건축가다.

 

 

 

(중략) 건축가로서 그의 소망도 소박하다. 최소한 한국이라는 특정한 상황, 대량생산 체제에서 건축가가 반복만 피하고 살아도 행복하다는 것. 그 작은 다양성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건축가가 기여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저는 세계를 이해하고 관여하기 위해 건축이라는 수단을 택했어요. 제게 건축은 한국이라는 토양을 반영하고 거기서 더 나가고 싶은 열망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구요. - 건축잡지 SPACE

 

 

 

 

 

파주의 픽셀하우스. 그냥 일반 가정집이다. 아니 일반 가정집을 요따우로 지어???

“가장 애착이 가요. 건축주 부부가 ‘경제적인 여유는 없지만 아파트 문화를 탈출해서 헤이리에 조그만 집을 짓고 싶다, 규모는 작지만 건물이 특별해서 그게 곧 우리 정체성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어요. 건축의 영향력에 대해 저보다 더 순수하게 믿고 계셔서 감동적이었죠.조민석

 

 

 

 

세계 어느 도시들 보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에서 그는 어쩌면 가장 도시적이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하는 건축가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덩어리 연구소라는 그의 사무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더 다양한 형태의, 더 아름다운 형태의, 그래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아직 젊기에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이 더 기대가 됩니다.

 

 

 

 

 

 

 

지금까지 10명의 건축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원래 적고 싶은 이야기가 있던 건축가도 있었고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건축가도 있습니다.

 

 

. . .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 그리고 좋은 옷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일상적이기도 하고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하지만 좋은 집에 대한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의.와 식.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좋은 집에 대한 관심보다 얼마짜리 집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지만요.

 

 

서두에서 좋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글을 쓰면서 아주 조금은 좋은 건축에 대해 다른 이에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집에 대해, 좋은 건축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생각해 보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었고 그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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