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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어디까지 가봤니? 울나라 건축물 8 - 졸라 가려 뽑은 등록문화재 30선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 졸라 가려 뽑은 등록문화재 30

 

 

 

 

 

 

 

 

 

압다뷔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요렇게 생긴 건물이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백과장(역시 건축전공자… 집 짓는 일로 밥 묵고 삼)과 둘이서 차를 타고 가다가….. 아…놔… 저거 머야….. 건물을 왜 조따우로 짓고 지랄들이야….. 지을려면 졸라 애먹었겠는데.. 쓰벌 돈 지랄들을 하는 구먼……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혹은 좀 신기한 건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눈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진만 봐도 가슴 벌렁벌렁 눈이 확 떠지는 그런 시기는 이제 다 가버리고 실물을 봐도 그저 그런…. 그것이 이국땅에서의 메마른 생활로 지친 심신에서 나오는 아주 자연스런 감상(?)이라 하더라도…. 이제 그딴 건물 따위에는 혹하지 않을 그야말로 불혹의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새로움 혹은 신기함, 아름다움 등을 보는 눈 느끼는 마음을 다 소진한 채로 살아가기에는 살아 온 날만큼의 살아갈 날이 아깝기도하고 좀 비참해지기도 합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이제 그런 눈과 마음을 가지려면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공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서두가 좀 길었습니다만….. 전통건축에 관련한 자료는 참 많이 있습니다. 자료 뿐만 아니라 절이며 고택이며 정원, 혹은 궁궐 같은 문화유산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현대건축에 관한 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새로운, 보면 우와~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건물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근대라는 요 좀 복잡 착잡 파란만장 요상한 시기의 유산들에 대해서는 참고자료도 물론이거니와 실물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어쩌면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등록문화재라는 게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보고 목록화하고 그 중 가치가 있다 싶은 것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좀 오래 보전하자…. 라는 건데요, 산업화라는 명목아래 무조건 밀어버리지만 말고 이제 좀 관심을 가지고 중요성도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래서 무관심했던 건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의도입니다.

 

 

 

그래서 그 등록문화재 중에서 좀 괜찮은 것들을 골라서 2004년에 문화재청에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졸라 가려뽑은 등록문화재 30선이라는 책을 펴냈더랬습니다. 저에게는 참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구하기가 꽤 어려워졌는데요 그래서 여기에 그 내용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자 출발하시죠~~~~

 

 

 

 

 

1. 효목동 조양회관

 

 

 

 

 

 

 

 

1922년에 지어진 건물인데요, 그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일본에 의해 기획되거나 지어졌는데 비해 이 건물은 대구지역의 민족지도자들에 의해 민족 계몽운동의 전당으로 건축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하겠습니다. 물론 건물자체도 단아하고 품위가 있구요현재는 광복회 사무실로 쓰고 있습니다.

 

 

 

 

 

 

2. 대봉동 구 대구사범학교 강당 및 본관

 

 

 

 

 

 

 

1923년도에 지어진 사범학교입니다. 일제시대의 사범학교는 저거 입맛에 맞는 선생을 육성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만 뭐 사람 일이란게 뜻대로 잘 안되지요. 강점기 말기에 여기 학생들이 비밀결사조직? 혈기왕성한 애들이어서…. 씨바 한판 붙자 쪽바리놈들아.. 같은 걸 조직해서 떼로 일본넘들을 막 괴롭히고 그랬댑니다. 그러다가 잡혀 들어가고….

 

 

 

 

 

 

학교에 가보면 그 때 잡혀간 학생들을 위한 추모탑도 있습니다.

 

 

옛날의 오르내리 창문은 지금의 샷시로 바뀌고 지붕도 일식 평기와에서 아스팔트 슁글로 바뀌는 등의 여러가지 변화가 있지만 파란만장한 근대사 80여년을 묵묵하게 보내고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습니다. (지금은 경북사대부중고 교사와 강당입니다.)

 

 

 

 

 

 

3. 옥천 삼양리 옥천천주교회

 

 

 

 

 

 

 

 

 

전통건축에서 절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큽니다. 국보로 지정된 건물 중 열에 일곱은 절이구요. 그러다가 천주교가 들어오고 어데 물레방아간 같은 데서 숨어서 예배도 보고 그러다가 근대에 와서 성당도 지어집니다. ~ 성당이네 하고 느낄 정도의 건물은 1892년에 지어진 약현성당이 최초입니다. 그 후에 성당건축은 절건축에 맞장을 뜰 정도로 많아집니다. 옥천천교교회는 충청북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천주교 성당교회입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에 지어졌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제법 스테인드글라스도 있고 건물도 예쁩니다.

 

 

 

 

 

 

 

 

 

 

 

 

4.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

 

 

 

 

 

 

 

일제시대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다니던 경성제국대학교 공과대학건물입니다.(1942년 건립) 공과대학이 서울의 변두리인 공릉동에 위치한 것은 공대의 설립의 원 목적이 전쟁에 필요한 무기개발이었고 개발한 무기를 시험해 볼 넓은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군요….. (육군사관학교도 공릉동에 있지요…… 산학 협동???)

 

우리가 흔히 서울대학교의 전신이 경성제국대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서울대의 입장은 서울대가 생기면서 경성제국대학을 흡수한 것이지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가 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뭔가 그럴 듯 하면서도 말이 좀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ㅋㅋ  사학자들은 김일성 종합대학이 오히려 경성제국대학을 더 닮아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건물이 뭔가 쫌대학 캠퍼스라고 보기에는 어색한….. 너무 권위적입니다. 서울공대가 관악으로 이전 한 후 지금은 서울산업대학교 건물로 쓰이고 있습니다.

 

 

 

 

 

 

5. 이화여자대학교 파이퍼 홀

 

 

 

 

 

 

 

 

배꽃대학교이름이 참 예쁩니다. 한때는 이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다 배꽃같이 예쁜 줄 알았습니다…..ㅎㅎ 이화여대는 예전에는 정동에 있었댑니다. 신촌으로 오면서 새 본관을 건립했는데 파이퍼 라는 미국 아줌마가 돈을 좀 많이 내서 건립(1935)한 건물이 이 파이퍼 홀입니다. (아래 사진은 건물 짓기 시작할 때 인데저 아줌마가 파이퍼 아줌마이겠지요?!)

 

 

 

 

 

 

연대 본관 및 고대 본관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학교건물은 다 저런식(?? 고딕양식에 외장이 돌로 된 건물) 이었는데요 특히 이 건물은 서양 석조건축의 고유한 돌쌓기인 애슐라 쌓기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구별된다는 군여…… 근데 뭐 어떻게 쌓는게 애슐라 쌓기야???? 찾아봐도 안나옵니다. 예전에 불국사의 돌쌓기 기법이 무슨 그렝이 기법이라 해서 아주 튼튼하다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만…. 그러고 사진을 다시 유심히 보니 좀 잘 쌓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대는 아직 한번도 못 가봤지만…. 요즘은 굳이 금남의 구역이 아니니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학교 건물중에는 유일하게 Top20 현대건축에 들어간 ECC도 볼 겸요

 

 

 

 

 

 

인조석을 자연석에 맞게 깎아서 아귀가 딱 맞게 돌을 쌓은 그렝이 쌓기…. 졸라 튼튼하다고….

 

 

 

 

 

 

6. 전남도청 본관

 

 

 

 

 

언제부터인가 광주를 상징하게 된 금남로그리고 분수대 너머 그 금남로를 유장하게 바라보고 있는 전남도청.

 

 

 

 

 

 

우리나라의 아픈 현대사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금남로이고 바로 이 전남도청 앞 광장입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전남도청은 현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대사까지도 관통한 건물입니다. 1930년에 준공되었고 그 당시 준공된 충남도청 등과 함께 일제시대 관청건물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캐노피와 그 뒤쪽 창의 장식이 좀 앙증맞습니다.

 

 

 

 

 

 

현재의 전남도청은 무안으로 2005년도에 옮겼습니다. 새 도청은 시원허니 보기 좋습니다. 이 후에 맹바기 아자씨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인가 머시기를 짓는다고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이 최후까지 남아있었던 전남도청 별관을 철거를 해야 된다 캐서 강도 밀고 땅도 밀고 다 밀어 버려 쓰벌…..맹바기 만쒜이 광주시민들이 한바탕 난리가 났더랬습니다. 우리나라 대단한 나랍니다. 때려부수고 새로 짓고 그렇게 하려는 데는 도가 텄습니다….

 

 

 

 

 

 

7.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

 

 

 

 

 

 

 

 

 

 

 

 

1937년 오바야시구미大林組(지금도 잘 나가는 일본 건설업체이다. 친구 윤상이가 한때 저기서 일했다. 내가 히로시마 대학교에서 졸라 노가다 할 때 지는 원폭의 흔적이 있다고 유명해진 후쿠로마치 소학교 지었다.)가 지은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입니다. 그 후 한국식산은행 산업은행 대전지점을 거쳐 지금은 대전우체국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독일과 만주에서 들어온 화강암이 쓰여졌다고 합니다. 금융건물의 장중함과 엄격함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창문주위의 세부장식이나 상부 수평돌림대 같은 것이 건물의 품위를 높여줍니다. 입구에 보면 등록문화재 19호라는 금딱지가 눈에 띕니다.

 

 

 

 

 

 

8.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시간을 거꾸로 가는 듯한…. 한 때는(1935년 준공) 남한 최대의 무연탄광이었고 광부아저씨들과 작부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을 곳. 지금은 쇠락할 대로 쇠락해져버려 이제는 겨우 버티고 버티어 무너질 날만을 기다리는 마을…. 그 시절의 추억을 곱씹으며 오늘도 선탄시설은 돌아간다네….

 

 

** 선탄시설이란 탄광에서 캐 올린 시커먼 거를 무연탄과 다른 이물질로 분리하는 시설…. 아직도 가동되고 있다고…. 백두대간 협곡열차라는 게 생겨서 철암역까지 간다고 하는데…. 시간내서 그 시절로 한번 돌아가볼까요……

 

 

 

 

 

 

9. 철원 노동당사

 

 

 

 

 

 

 

이름처럼 건물도 살벌하면서 좀 짠합니다. 뭔가 건물을 보기만 해도 분단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1946년에 북한 정권이 지었구요, 한국전쟁 때 까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검색을 해보니 가장 먼저 뜨는 게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국내여행 1001’……죽기전에 가볼 수 있을래나???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건축적 특징과 시대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문화재청은 말합니다. 이곳이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 배경이 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0. 철원 농산물 검사소

 

 

 

 

 

 

 

사실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건물인데….. 1940년경에 지어진 농산물 검사소 철원지소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북한의 검찰청으로 고문 같은 것도 막 하고 그런 건물로 쓰여졌다는 군요그런 건물의 내역을 알고 보면 좀 달라 보입니다.

 

 

 

 

 

 

11. 철원 승일교

 

 

 

 

 

 

 

남북한이 합작으로 만든 다리라고 합니다. 1948년에 북한에서 만들기 시작해서 중단된 다리를 남쪽에서 1958년에 완공했습니다. 철원에 있는 한탄강의 다리라서 처음엔 한탄교라고 명명했다가 완공 이후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을 합쳐서 승일교라고 만들었댑니다. 이름에 있는 역사적 가치도 그렇지만 아치다리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2.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1929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일본 자본에 대항해 호남지역 사람들에 의해 순수 우리자본으로 건립된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입니다. 호남은행을 세운 사람은 현준호라는 호남의 기업가이자 대지주입니다. 80년이 다 되어가지만, 호남은행 ~ 동일은행 ~ 조흥은행 ~ 신한은행으로 그 이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지방은행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건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13. 여수 애양교회

 

 

 

 

 

 

 

여수 애양교회는 우리나라 의료 선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하는데요…. 목포에서 활동하던 어느 선교사가 한센병 환자를 제중원으로 데리고 와서 치료를 하였는데요, 이것이 서양 의학에 의한 나환자 치료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 선교사인 윌슨이란 양반이 광주에 나병원과 교회를 세웠고 이것이 1926년에 여수 율촌면 신풍리 일대로 옮기면서 애양교회와 애양병원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애양병원 역시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신축건물에서 진료를 하고 예전의 애양병원은 의료 및 선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기 사진 참조)

 

 

 

 

 

 

당시 일본인에 의해 지어졌던 많은 건물과는 달리 애양교회는 근처의 애양병원과 함께 서양 선교사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이 특이하고 또 근처에는 토플하우스를 비롯한 근대건축물이 산재해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14. 나주경찰서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건물입니다. 돌출부위는 흰색 페인트를 칠하여 단순함을 피하고 붉은 색 건물의 강조성을 더했습니다. 1910년도에 건립되었다고 하니 거의 100년에 다가가는 역사를 간직하였습니다. 나주경찰서로 사용되다 1982년부터는 나주 소방서로(가장 오래된 소방서 건물이었다고….), 2002년 소방서가 신축건물로 옮겨간 이후는 고엽제 동우회, 나주시 농민회등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는 민족운동가들이 여기서 많은 고문과 고초를 겪었고 아직도 유치장 시설등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15. 나주 노안천주교회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모습의 교회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교회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입구의 화강석 기초가 인상적입니다. 1927년도에 지어졌으니 어지간합니다.

 

 

나주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물들이 참 많이 남아있는 동네라고 합니다. 전라남도의 곡창지대라 일본넘들이 졸라 뺏들어 갈라고 건물들도 많이 지어서 그렇테지요….

 

 

 

 

 

 

 

 

근처의 나주역도 둘러볼만한 곳입니다. 1925년도에 지어진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동네입니다. 나주에서는 나주곰탕(노안집)을 먹어야 된답니다…. 둘러보다 출출하시면…..

 

 

 

 

 

 

 

 

 

 

 16. 연산역 급수탑

 

 

 

 

 

 

 

충남 논산의 연산역에 있는 급수탑입니다. 요게 옛날 칙칙폭폭 증기기관차 시절, 기차에 물 대줄라고 만든 물탱크입니다. 1911년에 만든, 지금 남아있는 급수탑 중에 젤루다 오래된 거라고 합니다.

 

 

 

 

 

찾아보니 우리 동네에도 있네여요거슨 삼랑진역 급수탑입니다. 요것도 등록문화재입니다. 삼랑진역에서 기차도 타보고 그 근처에 간 것만 셀 수도 없는데…. 저런 거 안보였습니다. 역시 모르면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ㅋㅋ

 

 

 

 

 

 

17. 서울시청사

 

 

 

 

 

 

 

 

 

서울시 신청사가 들어서기 전 사진입니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신청사….ㅋㅋ (어디까지 가봤니? 울나라 건축물 5 - 찾아 보고 싶은 한국의 건축가 유걸편 참조)

 

 

근데 이 건물 때문에 오세후니가 두고두고 까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26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시청으로 쓰인 역사적 가치도 있고 여하간 서울을 상징하는 건물이니까그래서 2003년도에 이미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기습으로 철거하다 문화재청에 딱 걸렸습니다. 그래서 씨바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캐싸타가 결국 파사드는 보존하자 캐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부서서 쏵 밀고 정리해서 새로 하는 거는 무조건 1뜽 우리나라……

 

 

그래도 나중에 복원은 그나마 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서울 도서관이 옛 본관에 입주해서 이젠 이름도 옛 서울시청 본관이 아니라 서울도서관입니다. 시간 내어서 도서관에도 함 가보고 새 시청도 구경도 하고…… ~ 할 일 많다. ㅎㅎ

 

 

 

 

 

 

18. 건국대학교 구 서북학회 회관

 

 

 

 

 

 

 

조선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서북지역 사람들은 졸라 까였던 거 같습니다. 거 머시냐... 이시애의 난? 이것도 그것때문에 난 거..... 기억이 오락가락^^ ㅋㅋ 장관이나 요직의 관료 같은 거는 절대 안주고…. (우리도 얼마전까지 전라도가 그랬습니다만……) 서북 지방의 사람들이 거칠고 타협할 줄 모르고, 아마도 그런 기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엄친아의 포스가 느껴지는 이 냥반도 서북지역(평안남도) 사람입니다. 그 시기에 미국 유학파입니다. “대한사람은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귀국해서 대성학교도 세우고 김좌진 박은식 이동휘 등과 서북학회(1908)도 세웁니다. 그래서 서북학회는 근대 및 현대 교육의 산실이 됩니다. 보성학교 ~ 협성학교 ~ 조선정치회관(건대의 모체) ~ 건국대 건물로 쓰였습니다.

 

 

건대가 이전하면서 이 건물도 나중에 건대 안으로 이전, 복원하였습니다(1985). 현재는 상허기념관이라는 건대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보면 안창호 선생의 포스가 건물에서 느껴질래나??

 

 

 

 

 

 

19.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

 

 

 

 

 

 

 

주교좌성당(Cathedral)을 찾아보니 주교가 있는 성당이랩니다. 안에 주교가 앉는 자리가 있다는 군요. 보통성당보다는 지위가 좀 높은 성당쯤 되겠습니다. 명동성당도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이군요.

 

 

벽돌로 된 다른 교회와는 달리 얘는 국산돌(홍천의 어느 강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장중한 것이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강원도에 천주교 신자가 많다고 그러는데요, 조선 말에 하도 구박을 하니까 신자들이 강원도 산간으로 다 도망가서 그렇다고 합니다. 1949년에 완공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무참이 다 박살이 나서 다시 조금씩 지어서 1956년에 재완공을 했습니다. 동네에 저런 기품이 있고 역사가 있는 성당 하나쯤 있으면 아마도 동네가 달라 보일 겁니다.

 

 

 

 

 

 

 

 

 

 

20.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이쁠 것도 없는 아내는 요즘의 우리 아내인가??ㅋㅋ 이동원 아저씨가 노래도 불렀습니다.

 

 

여하간 정지용시인이 충북 옥천에 있는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내 육영수여사는 직접 여기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면 정지용 시인의 해바라기 씨 라는 시가 적힌 시비와 육영수 여사의 휘호탑이라고 있는데요근데 휘호탑은 좀 생뚱맞습니다.

 

 

 

 

 

 

1926년 처음 건립했고 1936년 다시 재건축이 된 이 건물은 외부에 긴 목재로 마감하고 특히 복도 천정을 그대로 노출시켜서 공간감을 확보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초등학교 건물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고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문화재청에서 관리한다고 합니다.

 

 

 

 

 

 

 

 

21.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625가 한창이던 1950 7월 노근리 사람들은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피난 가는데 비행기에서 막 폭격하고 기관총 총알이 막 날라옵니다. 몇 명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쌍굴다리에 피신합니다. 근데 이 피신한 쌍굴다리에 미국이 무자비하게 또 폭격합니다. 이유는 피난민에 간첩이 숨어있다는 첩보가 있었다고….. 그래서 선량한 사람 200여명이 죽은 사건이 그 유명한 노근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입니다. 미국넘들은 우리는 그 사람들 쏴라고 안했어라는 졸라 씨바 구라만 치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도 설쳐사니까 무려 50년이 지난 2001년에 발 구린턴이 그래 미안했어라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 미군넘들이 아직 있다. 주한미군 철수 그 구호가 언제쩍 구혼데.... 탱크에 학생이 치어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안하는 새끼들이…. 주한미군철수 무려 40년 가까이 외치고 있는데도 안나간다. 떠거랄 놈들. 노통이 재임시절 만약에 전쟁이 나면 작전권은 당연히 우리가 가진다 라는 전지 작전 환수권을 회수하느라 그렇게 노력했는데 맹박기도 안 가져오고 박그네도 또 슬그머니 미뤘다. 씨발. 아직까지 쫄고 있다. 도대체 머가 그리 무섭냐???

 

 

그렇게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무렇지도 않은 쌍굴다리가 아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쌍굴다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가면 무수한 총알자국들을 아직도 볼 수 있습니다. 근처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도 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의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22.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

 

 

 

 

 

논산시 강경읍. 금강의 수상교통, 그리고 곡창지대의 중심으로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불리웠던 곳. 그래서 근대화도 졸라 일찍 되어서 충청도에서 전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도 이곳이며 강경에서 돈 자랑 말라는 말도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남선 개통 이후 쇠락의 길을 거듭하여, 지금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옛날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삼사십년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학교는 논산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1905년 개교)이고 이 강당도 역시 1937년에 지어져 그 역사를 자랑합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여기 강당에서 입학식도 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고 하니…. 참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요런 띠돌림 장식 같은 것은 좀 앙증맞습니다.

 

 

그런 관계로 논산에는 7개의 등록문화재가 있는데 그 중 6개가 강경에 있다는 군요. 엄니가 젓갈 사러 가실 때 한번 따라가서 강경읍내 구경이나 좀 해야겠습니다.

 

 

 

 

 

 

요거슨 한옥이면서 이상하게 일본풍이 팍팍 풍기는 남일당 한약방. 옛날에는 졸라 큰 한약방이었다는데 지금은 망해서 그냥 보존만 한다고 합니다. 이용재 선생(건축평론가)은 가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갈한 왜식한옥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역시 등록문화재입니다.

 

 

 

 

 

 

23. 김제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 죽산지소

 

 

 

 

 

 

 

이 건물을 보면 왜 아사코의 뾰족 지붕 뾰족 창이 생각날까요?? 머 잠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ㅎㅎ

 

 

 

 

징게맹갱외에밋들” – 김제 만경 너른 들

 

 

김제는 만경평야 김제평야의 중심 즉 쌀이 무진장 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일제도 여기 땅을 뺏을라고 눈이 벌개 달라들었죠. 동척, 하시모토의 농장…… 엥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인데…… 아 그러나 기억이 안납니다. 총명했던 나는 벌써 어디로 도망가고 없습니다. 네이버 오빠야에게 물어보니백종두 죽산면장…… 그렇습니다. 소설 아리랑의 내용이자 무대입니다.

 

 

이 건물은 그넘의 농장주 대지주 하시모토의 사무실입니다. 그 후로 농업기반공사의 죽산지소로 사용하다 요즘은 홀로 방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보성 벌교에 가면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습니다. (김원 건축가가 설계했고 문학관으로는 참 잘 지었다고….) 김제에는 아리랑 문학관이 역시 있습니다. 찾아보니 태백산맥 문학관보다 훨씬 먼저 생겼군요. ….. 저기 하시모토 사무실은 머 가봐도 되고 안 가봐도 되지만, 여기는 함 가봐야겠습니다. 징게맹갱의 그 들판도 좀 보구요.

 

 

 

 

 

 

24. 구 소록도 갱생원 감금실

 

 

 

 

 

 

 

 

 

한센의 아픔이 서린 작고 아름다운 섬 소록도. 전남 고흥군의, 섬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붙여진 섬 소록도. 현재에도 국립 소록도 병원과 한센병 환자 700여명 그리고 그리고 의료진과 자원봉사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소록도 감금실은 일제시대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를 저거 맘대로 감금하는 교도소와 같은 건물입니다. 성한 사람에 대한 대우도 모질던 시절이니 나병환자야 오죽 했겠습니까감염을 이유로 가족끼리도 멀리서 보게만 했다는, 그리고 병이 나아서 이 감금실을 나올 땐 남자들은 모두 거세시켰다는, 그리고 해방이 되어 우리도 사람이여 이제 우리도 사람답게 살게 해줘라고 호소하던 환자 80여명을 그냥 죽인, 아픈 역사의 장소입니다.

 

 

 

 

지금은 소록도로 들어가는 다리(위 사진, 소록대교)가 생겨 쉽게 소록도를 갈 수 있습니다.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입니다. 그러나 자연경관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소록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록도 전시관

 

 

 

 

 

 

1916년에 설립한 소록자혜병원을 전신으로, 소록도 갱생원, 국립나병원등의 이름을 걸쳐 현재는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센병의 진료와 한센인의 지도와 복지 등에도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25. 구 소록도 갱생원 식량창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신창 선착장에 자리잡은 갱생원의 식량창고로 건축한 건물입니다. 한센병 환자들의 식량을 육지에서 배로 운반해 와서는 여기에 일단 보관했다가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데요, 특히나 이 건물을 짓는 데는 환자들을 직접 총동원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20일만에 지었다고 하는데요쓰벌넘들 채찍 같은 거 막 휘두르고 그랬을 거야….

 

 

 

 

 

 

바다에 면한 이 연속된 작은 아치는…. 그냥 콘크리트 보로 하부기둥을 연결하는 것이 일하기에는 훨씬 쉬웠을텐데, 일부러 저렇게 아치로 만들었나? 좀 아름답기고 하고 슬퍼기도 하네요.

 

 

감금실과 식량창고 2개의 등록문화재를 소개하였는데요, 소록도에는 무려 11개의 등록문화재가 있습니다. 검시실, 감금실, 본관 및 강당, 만령당(납골당), 식량창고, 신사, 등대, 녹산초등학교 교사, 성실중고등 성경학교, 원장관사, 순천교도소 소록지소 여사동 등…. 그 만큼 근대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입니다.

 

 

 

 

 

 

 

 

 

 

26. 파주 구 장단면사무소

 

 

 

 

 

 

 

옛 장단역에서 서쪽 능선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구 장단면사무소건물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이 일대 장단면의 행정업무를 관할하던 면사무소 건물이다. 1층의 단층구조인 철근콘크리트 건축물로 외관상 일제시대 때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건물의 골조는 그대로 남아 있으나 부식과 콘크리트의 탈락이 심한 상태이고 곳곳에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총 건축 연면적은 295.4㎡이며 건물 높이는 3.5m의 아담한 건물이다. 이 일대는 현재 비무장지대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고 있으나 남북간 경의선 철도연결 및 도로연결 사업 등이 추진돼 이 일대에 대한 관광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으며 통일을 함께 그려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로서 그 의미가 있다. – 파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DMZ (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라고 불리는 곳이다. 사실은 졸라 무장지대이다.

 

 

 

 

어느 책에서 본 글귀가 생각이 납니다. 저기 있는 군인들은, 비무장지대의 한반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인 동시에, 지구상으로도 거의 남지 않은 세계 최대 규모의 온대 원시림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위 사진의 장단면사무소 그리고 장단역이 모두 이 비무장지대에 있습니다.. 남방 한계선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유엔군사령부에서 발급한 통행증이 필요하다고. 울나라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평화로운, 세금도 없고 공동체 사회 유토피아 같은 - 대성동 마을 여기 남자들 군대에도 안간다. 정말이다. 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생에 저 세계 최대규모의 온대 원시림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을까요……

 

 

 

 

 

 

27.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

 

 

 

 

 

625의 폭격에 멈춰버린 경의선 마지막 열차입니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적 유물이며, 21세기 한반도 평화통일의 염원이자, 대륙횡단 철도교통의 상징이다 경기도 티스토리 중에서

 

 

당시에 이 증기 기관차를 마지막으로 운전했었던 한준기 기관사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1950 12 31일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황포역에서 서울로 후퇴했다. 개성역에 도착해 거기서 기차 차량을 정리해 기관차 두 대에 매달아 먼저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도 출발했다. 10시쯤 장단역에 우리 기관차가 도착하자 미군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미 그때 북한군이 쓰지 못하게 모든 차량을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장단역에 기관차를 버리고 우리를 태우러 온 다른 기차를 이용해 후퇴했다. – 위키백과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그 열차를 다시 한번 운행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준기 기관사는 2011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사진에 보이는 새것같은 선로는 경의선 남북 연결 사업으로 기존 노반을 따라 새로 부설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인적이 거의 없어서 풀이 무성했다고 합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장단역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져 있는 북으로 가는 첫번째 역인 도라산역입니다.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근열차가 여기서 운행되기도 했는데요

베트남이나 라오스 이런데에 수천억을 부어 투자를 하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개성공단은 왜 맨날 그리도 말이 많은지이런 거 보면 정말 맹바기하고 그네하고 짜증이 만땅이다. 쫌 퍼주먼 안되냔 말이다.

 

 

 

 

평양이라…. 참 가깝고도 먼 동네입니다. 꼭 한번 타고 신의주까지 가 보고 싶습니다. 이제 40년도 채 안남았습니다.

 

 

 

 

 

 

28. 덕수궁 석조전 동관

 

 

 

 

 

 

 

 

 

석조전이 위치한 경운궁(현 덕수궁)은 외세의 압력으로 개항을 하였지만, 뒤늦게나마 자주적 근대화를 지향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대한제국의 본궁으로 삼았던 곳이다. 일본에 의해 그 꿈은 좌절되었지만, 근대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고종의 의지가 짙게 베어 있는 석조전, 정관헌, 중명전 등의 건물이 남아 대한제국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문화재청

 

 

이 건물은 상해에서 활동하던 영국 건축가 하딩이 설계했습니다. 1900년에 착공해서 1910년에 완공되었는데요, 고종이 이제부터는 여기가 대한제국의 왕궁이다 라고 선포하고 졸라 폼 나는 건물하나 짓자 해서 그럼 우째 짓지? 고민하다 우리의 갈 길은 서구의 선진국이다그러니 건물도 서양식으로 멋찌게 지어보자 고 해서 만든게 이 석조전입니다. 딱 봐도 폼나지 않습니까??

 

 

 

 

 

 

대한제국 最高의 근대건물인 석조전 동관. 고종이 집무실 겸 저거 집으로 쓸라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지었는데 결국 함 써보지도 결국 몰락하고 맙니다. 아이고 아쉬워라…. 완공 기념으로 저기서 무수리 언니들이랑 뜨거운 밤을 보낼 생각이 아니었던가….

 

 

 

이것을 두고 어떤 블로거는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건물을 짓는 것은 몰락의 징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도 이제 거의 몰락할 때가 왔다고 아래 건물을 보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인 유경호텔입니다. 어느 기사에 보니 2013 8월에 개장한다고 그랬는데어떻게 되어가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석조전과 유경호텔전혀 관련이 없는 건물이지만 어찌 보면 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참고로, 덕수궁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전 서관입니다. 석조전 동관은 현재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9. 덕수궁 정관헌

 

 

 

 

 

 

 

고종은 임금이었지만 머리가 많이 아팠을 겁니다. 멀 해볼려고 해도 힘은 없지, 일본넘들이랑 청나라랑 러시아랑 사사건건 간섭하지, 간섭을 넘어 우찌 한반도를 함 먹어 볼라고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그 와중에 마눌은 살해당하지참 왕이지만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와중에 서양탕약(양탕국)을 맛보게 됩니다. 아마도 마누라 죽는 거 보고 쫄아서 러시아 공사에 1년 정도 숨어 지냈는데 (아관파천) 그때 처음 맛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여하간, 어허라 이거 쌉싸름하고도 달콤하고묘하네자꾸 빠집니다. 그래서 왕은 커피 매니아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조용하게 커피 마실 곳도 하나 있었으면 싶습니다. 얼쩡거리던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에게 야 커피숍 하나 이쁜 걸로 지어 봐!” 해서 만든 것이 이 정관헌입니다. 대한민국 1호 커피점입니다. (1900년 완공)

 

 

앞에 소개한 석조선 동관이 가장 멋지고 화려한 근대 건축물이라고 한다면 정관헌은 궁궐안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입니다. 러시아 사람이 설계해서 러시아 삘이 좀 납니다. 강릉에 가면 아름다운 우리 5대 고택중의 하나인 선교장이 있는데 그 중에 러시아 공사가 선물해준 열화당(아래 사진)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어째 좀 삘이 비슷한 거 같지 않습니까? (어디까지 가봤니? 울나라 건축물 8 - 한번쯤 묵어 가고 싶은 옛 살림집 : 강릉 선교장 편 참조)

 

 

 

 

 

 

요즘 커피숍도 콩다방 별다방 등 참 화려합니다만 고종의 커피숍도 저런 기둥의 장식물을 보면 화려하군요.

 

 

100년도 훨씬 전에 고종이 여기서 커피 한잔 마시며 아이 쓰벌 졸라 힘들어. 왕 못해 묵겠어하던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 집니다.

 

 

 

 

 

 

30. 창경궁 대온실

 

 

 

 

 

조선왕조의 법궁은 경복궁입니다. 창덕궁은 경복궁을 보조하는 궁궐이었구요, 근데 왕들이 경복궁 별로 안 좋아했답니다. 서슬이 퍼런 경복궁보단 뭔가 따스한 분위기의 창덕궁이 더 맘에 들었나 봅니다. 급기야 임난 이후에는 아예 법궁을 창덕궁으로 옮겨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왕들 저거 사돈 팔촌에 그 떨거지들까지 모두 다 살기에는 좁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정치 이런거 말고 사람만 사는 궁궐을 더 짓게 되는데 이게 창경궁입니다.

 

 

1900년 정도에 들어와서는 일본넘들이 우리도 좀 놀아야 되는데 놀 데가 없네…. 해서 창경궁에 코끼리도 들여오고 식물원도 만들고 연못도 만들고 일본식 정자도 만듭니다. 에잇 이름도 바꿔야지(1911)…. 창경. (일본 신쥬쿠에 가면 그 도심지 한가운데에 정말 놀랄만큼 크고 잘 꾸며진 공원이 있는데 그 이름도 신쥬쿠 교엔御苑입니다.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 '언어의 정원'의 배경으로 나왔습니다.)

 

 

창경궁 대온실도 이 시기(1909)에 만들었습니다.

 

 

 

 

 

 

 

 

햇볕을 많이 받기 위해 창살 두께를 최소화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건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쾌한 느낌을 받습니다. 개폐장치도 최신 자동 계폐시설입니다. ㅎㅎ 아직도 이 장치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후쿠바 하야토라는 왕실담당 일본 설계자가 설계하고 프랑스회사에서 시공하였다고 합니다. 1900년에 파리에서 만국 박람회가 있었는데요, 이 때 지어진 그랑 팔레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뭐 이거를 본따서 지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습니다만…..

 

 

 

 

 

 

그랑 팔레의 내부 전경

 

 

 

 

창경궁 대온실 내부입니다.

 

 

 

 

 

등록문화재 30개를 살펴보았습니다. 문화재청에서 가려 뽑은 등록문화재 30선을 펴낼 때 만 해도 등록문화재는 100여개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1호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전력 사옥부터 의병 활동을 하던 소류선생이 은거하며 후학을 가르쳤다는 소류정 (497), 그리고 한국 최초의 프로골프인 연덕춘이란 사람의 골프채 – 500까지 있습니다.

 

 

이 책의 발행인인 유홍준 선생은 이 등록문화재 제도가 좀 더 일찍 시행되었다면 현대화의 미명아래 사라져간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합니다. 그리고 그런 근대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라는 인식이 지금에라도 퍼지게 되고 관심이 높아가는 것에 대해 다행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합니다.

 

 

건물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은 그 건물의 형태나 모양이 화려하고 독특하거나 혹은 쓰임새가 가치가 있거나, 아니면 어느 역사적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 그런 건물일 것입니다. 즉 과거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그런 건물은 당연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건물에 담긴 사연을 알면 건물을 보는 시선에도 연민과 관심과 사랑이 자연스레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요.

 

 

 

이 글은 기본적으로 DMook(Digital Magazine Book)에서 제공하는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가려뽑은 등록문화재 30. 2004년 문화재청 발행] 이라는 책의 내용과 사진을 옮겨왔습니다. 그 외에 다음의 돌구름 한결같이 365힐링존농촌관광 보슬비(연우) 비단들님, 네이버의 하늘여행자, 버냥이님의 블로그와 까페, 그리고 네이버캐스트 네이버 지식백과 옥토사진저장소 강철40호 약돌이의 꿈꿀권리 파주시청 김바다의 Joins 블로그 이용재와 함께 하는 인문학적 집짓기 사진은 권력이다의 티스토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Ticktalk 경기도 Soy의 티스토리 베네통코리아 블로그 수피아사진첩, 위키백과 엔하위키에서 글을 참고하였고 사진을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