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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아내에게

 

 

 

 

# 7. 아내에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막상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고 하니 헝클어진 머리 속의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소. 당신은 한국에 있고 나는 일본에서 혼자 일했던 초창기의 장거리 연애 시절엔 자주 편지도 쓰고 애틋하고 했는데 말이오. 그 시절엔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지요. 어떻게 하면 당신에 대한 나의 감정을 더 잘 나타낼까, 당신의 감정을 어떻게 하면 잘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는데. 아, 나만의 생각인가요?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감추려고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시절엔 세상이 당신과 나로 이루어졌지만, 세월은 당신과 나 사이에 여러가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져서 어쩌면 서로에게 민낯으로 대할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해 이렇게 편지 하나 쓰는 것도 서먹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께 고맙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막내가 태어나자마자 집을 떠나 밥벌이라는 핑계로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닌 것이 지금에까지 왔습니다. 주말에 혹은 일년에 몇 번정도 잠시 집에 다니러 온 아빠였습니다.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게 보살피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였지요. 그럼에도 아이들은 너무나 대견하게 잘 자랐습니다. 여태 내색은 잘 안했지만, 당신 정말 수고했다고, 자랑스럽다고,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책만 읽는 바보'라는 핀잔을 당신에게 듣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앞서간 여러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을 공유해서 세상살이에 대한 지혜로 내가 더 인간답게 살고, 보다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책을 읽는 나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사람 사는 도리,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행동의 적극성, 날마다 하는 여러 결정들은 아무리 보아도 나보다 낫습니다. 아주 가끔 버거울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당신의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뭐, 그래서 부부가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서두에 당신과 나 사이에 세월이 선물한 여러가지가 있다고 썼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들로 인해 아마도 지금이 가장 바쁘고 혼란스럽고 재미있을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오. 아이들은 한창 자라고, 당신과 나는 각자의 일이 있고, 해야 할 판단과 결정이 인생에 가장 많은 시기인 것 같소. 그래서 어쩌면 좀 힘들지도 모르지만, 좀 있으면 아이들은 품을 떠날 차비를 하고 시간이 더 흘러 세상 사는 것이 물 흐르듯 하게 되면 이 질풍노도의 시기가 그리워지겠지요.

 

 

 

 

지금 바쁘고 좀 힘들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보자는 얘기를 너무 길게 적었구려. 퇴계 선생은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어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한편 바르게 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관계다. 그래서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곱씹어 볼 만한 말입니다. 항상 그렇게 삽시다. 친밀하게 바르게 조심하며.....

 

 

 

 

항상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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