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이야기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부처님 오신날, 구례 화엄사 구층암에 올랐습니다. 네, 맞습니다. 모과나무 기둥이 멋드러진 건물 말이에요. 예전에 딸이 아주 어렸을 때 왔더랬는데, 참 오랜만입니다. 지금 아들 녀석은 요앞 계곡 건너편 내원암에서 템플스테이 중입니다. 학교에 못가는 아쉬움을 절에서 친구들과 함께 달래고 있습니다.

 

 

 

구층암은 화엄사를 가로질러 갑니다. 코로나로 행사는 한 달 후에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날이 날인 만큼 방문객이 많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각황전도 성큼성큼 지나쳐서 구층함을 오르는 오솔길로 접어듭니다. 한적해집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옛 블로그를 보니 2012년에 왔다고 되어 있다. 8년만에 왔다. 근데 아주 처음 보는 것 같다. 지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 보는 이 건물이 새롭다. 5칸짜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암자가 기품이 있다. 통째 옮겨 가고 싶은 건물이다. 백미는 역시 모과나무 기둥이다. 아내와 구층암이 묘하게 어울린다.

 

 

 

짓다가 보니 기둥으로 쓸 나무가 모자랐다. 둘러보니 저기 모과나무가 있네. 저런 모습으로 기둥이 되려나? 그까이꺼 함 해보지머. 이 기둥이 그냥 둥근 평범한 기둥이었다면 구층암도 평범한 화엄사의 암자였을 것이다. 이 모과나무 기둥, 참 절묘하다. 기능과 아름다움을 모두 충족시킨다. 그 때 그 목수들도 짓고나서 틀림없이 만족했을 것이다. 대단한 건축가들이다. 

 

 

 

아내가 모과나무가 멋지다고 탄성을 지른다. 구층암의 기둥을 말하는 줄 알았더만 천불보전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이 살아있는 나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내의 탄성을 듣고 보니 이 나무도 구층암 만큼 기품이 있네. 잘 생겼다. 사실 잘생긴 이유가 있다. 본래 이 두 그루의 나무를 베어 기둥으로 삼고 그 밑동에서 자란 게 사진 속의 나무다. 시간이 지나고 나무가 더 자라면 또 기둥으로 삼을란가. 

 

 

 

대청마루에 앉아 모과나무를 이리저리 보던 중 뒤돌아보니 이런 현판이 붙어있다. 아하. 저 글을 보는 순간부터 차의 향기가 퍼졌다. 차가 없어도 차향이 난다. 분명 저 현판에서 나는 향기다. 어쩜 이리 절묘할까. 

 

 

 

구층암 오솔길을 따라 계곡과 숲을 걸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청명했고, 바람은 상쾌했고, 태양은 좀 뜨거웠습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자꾸 따라옵니다. 땀이 살짝 났지만 기분은 더없이 맑아졌습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자꾸 따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