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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오래된 편지

 

 

 

# 81. 오래된 편지

 

 

  

 

 

 

 

이거 해석 쫌 해도고

야, 이게 언제적 편지냐?

 

 

2000년도 다이어리에 낑기가 있는 거 주웠다.

이걸 아직 가지고 있는 게 용타. 아직 해석 안하는 거는 더 용하고.

 

 

번역해가 올리라.

안 알랴줌.

 

 

 

오래된 친구한테서 오랜만에 카톡이 날라왔습니다. 아주 오래전 히로시마 대학교를 지을 때 친구에서 쓴 편지입니다. 그 편지가 반가웠고, 그걸 아직 보관하고 있고 뜬금없이 나에게 보낸 친구가 또 반가웠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친구입니다. 세상에서 친구가 가장 중하다고 여길 때 옆에 있던 친구입니다. 다들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이젠 예전처럼 자주 볼 수 없는, 친구 부모님의 부고시에나 만날 수 있는 처지가 되었씁니다.

 

 

 

편지를 보니 20대의 그 까마득한 시절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아주 젊디 젊은 나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한참을 회상한 후 친구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세상이 발 아래 있을 시절이다. 지금은 어깨에 너무 많이 매달려 있다 주렁주렁. 한없이 가볍고 철 없을 그 때가 그립다."

 

"나는 그 반대다. 그 때 세상에 억수로 쫄았고, 의심 많고, 조심스럽스러웠다. 인자는 밸 무스븐 기 없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말은 아니지만, 하여튼 쫄거나 무스븐 거는 없네."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래서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예전을 기억하는 방식과 지금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젊은 시절과 비교하여 삶의 무거움에 겨우 견디는 나에 비해 친구는 현실을 살아가는 의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지도요.

 

 

 

 

 

 

편지의 내용은 지브리의 하야오상이 만든, 아름다운 아드리아 바다를 배경으로 돼지로 변해버린 비행사 포르코와 마담 지나와의 아련한 사랑을 그린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엔딩곡 가사입니다. 젊은 시절에 이 가사가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나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에게는 알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ㅎㅎ

 

 

 

자그마한 하숙집에 몇 명이고 몰려와

아침까지 소란스레 놀다 잠들곤 했지.

폭풍과 같은 매일매일을 불태웠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렸었지. 그랬지.

 

 

지금도 그때처럼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리며

계속 달리고 있다네.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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