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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직업에 대한 단상

 

 

 

# 83. 직업에 대한 단상

  

 

 

주위를 돌아보면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하는 요리는 뭐든지 다 맛있는 사람, 글을 맛깔나게 쓰는 사람, 그림을 실감나게 잘 그리는 사람, 앱을 개발하는 사람,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사람 등등. 그래서 그들의 직업은 요리사, 작가, 만화가, 개발자, 학원 선생입니다.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밥 벌어 먹고 삽니다. 그 일로 밥 벌어 먹고 사니 남보다 더 잘하게 된 것이기도 하지요.

 

 

내가 남보다 잘하는 일은 물론 집을 짓는 일입니다. 대학 공부도 그걸 했고, 졸업 후에도 한 눈 파는 법 없이 계속 그 일만 해오고 있습니다. 근데, 이 일이 몇 년전부터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걸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이제 할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구요. 건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가 힘들다면 노가다 말고 다른 형태의 건축을 해보고 싶습니다.

 

 

전혀 다른 일을 해보면 어떨까 라고 자주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의 일을 배울 생각도 시간도 열정도 없어서 집 짓을 외에 어떤 경쟁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 꼽아보자면..... 외국어입니다.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꽤 오래됩니다. 쌩고생 하면서 배운 일본어는 아직 쓸만 합니다. 중국어도 중국 법인에서 돌아온지 벌써 5년이 넘어 많이 까먹긴 했지만 아직 간간히 써먹습니다. 영어는 스탠다드 잉글리시는 무리지만 서바이벌 잉글리시는 괜찮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인간들하고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건 엥간하면 자신있습니다.

 

 

요리도 좋아합니다. 내가 만든 요리는 아내도 아이들도 아주 잘 먹습니다. 가끔 나도 놀랍니다. 할 시간이 부족하고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분야입니다. 그 다음은 책 읽고 글 쓰는 일입니다.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 밥벌이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잘 하는 것을 쭉 꼽아봤습니다만, 저 일들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자신이 없습니다. 경쟁력이 없습니다. 나보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잘하는 이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노가다를 전공으로 하면서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물론 드물지만, 하나만 떼어보면 그 가치는 확 낮아집니다. 물론 가르친다는 건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요. 요리로 밥벌어 먹기에는 무지 큰 결단이 필요합니다. 가끔 하는 취미와 같은 요리와 업으로서의 요리는 전혀 다를 겁니다. 책 읽고 글 쓰는 걸로 밥벌어 먹기에는 딸린 식구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내가 받는 돈은 대학의 전공을 포함해서 20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 일한 전문성에 대한 댓가일 겁니다.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 시작하는데 지금의 월급을 기대한다는 건 당연히 무리겠지요. 조금씩 나만의 특징을 잘 살리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가치도 점점 올라가리라고는 생각합니다. 너무 희망적인가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늪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 담배 한 대 태우며 해본 공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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