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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휴가 3일차

 

 

 

# 86. 휴가 3일차

  

 

 

"아빠, 낼 아침은 밥 해주세요. 밥 먹고 학교 가게요."

"응, 그래. 꼭 밥 해줄께."

 

 

 

어제 저녁에 들이가 한 말이다. 딸이 아침을 해달라는데, 자신있게 해준다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야, 아빠는 매일 6시 40분에 일어나서 출근한다규~~ 아빠 못 믿어?! 이렇게 큰 소리를 쳐놔서 급기야 알람까지 맞추고 잤다. 아침에 식구들이 다 잘 때 일어나서 아침밥을 안친다. 간단하면서도 추억이 서려 있는 간장계란밥이 메뉴다. 내가 들이만 할 때 울 엄니가 자주 해주시던 그 밥이다. 계란을 꺼내보니 헉, 달랑 하나 남았다. 계란 박스가 냉장고에 들어있어 미처 확인을 안했더마..... 얼근 근처 마트로 뛰어가서 계란을 사온다. 날계란을 밑에 깔고 그 위에 갓 지은 뜨거운 밥을 얹히고 간장 적당량에 참기름 조금이면 완성이다.

 

 

 

계란밥 네 그릇에 김치 하나. 나와 들이는 맛나다고 밥그릇을 싹싹 비운다. 아내와 강이는 별로 성에 차지 않는지, 아직 잠이 들 깨었는지 먹는둥 마는둥 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들이를 먼저 내려주고 강이도 학교까지 데려다 준 다음 개락당으로 출근한다.

 

 

 

커피를 내려 아내는 아메리카노, 나는 라떼를 만들어 느긋하게 한 잔 마신다. 그러고는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책을 읽는다. 하늘은 파랗고 시골의 마을은 조용하다. 책을 읽다 강아지 멍군이와 놀다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또 책을 읽는다. 개락당의 고즈넉함과 편안함에 취해 잠깐 졸기도 한다. 책을 읽고는 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참 이상하여라. 한창 일이 바쁠 때 잠깐 짬을 내어 읽는 책은 그렇게 집중도 잘 되고 진도도 잘 나가더마, 책을 읽으라고 시간을 무한정 주니 도리어 책이 더 읽히지 않는 아이러니가 신기하다.

 

 

 

풋고추와 된장, 볶은 김치와 정구지 무침으로 점심을 먹는다. 이렇게 먹는 점심은 참 맛나다. 오후에도 눈은 계속 책을 읽고 있다. 개락당 책상에서, 마루 평상에서, 흔들 그네에서 책을 읽었다. 몇 시간을 읽었는데, 겨우 백여 페이지다. 막내가 마칠 때가 되어 학교로 간다. 학교 운동장에서 맨손 체조를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쏟아진다. 시골 학교라 처음 보는 애들도 반갑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나도 안녕 이라고 답해준다. 기분이 좋아진다.

 

 

 

들이와 데이트가 있다. 어제 못다산 신을 사러 가기로 하여 들이를 만나 아내와 함께 백화점으로 간다. 신을 고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점심에 밥 타는 줄이 너무 히퍼덕 지나가서 배불리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 선행 학습을 한 아이들 위주로 진행해서 자신은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그냥 진도를 나가는 수학 시간 이야기 등등. 나는 맞장구를 쳐준다. 아이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집으로 와서 저녁 준비를 한다. 오늘 저녁은 개락당에서 뽑아온 파로 만든 파전이다. 강이가 오징어를 꼭 넣어야 된다고 해서 오징어도 준비한다. 강이가 밥을 짓고 부침개 반죽을 만들고 나는 오만년 된 설겆이를 하고 아내는 파를 다듬는다. 넉넉히 기름을 누른 후라이팬에 튀김 가루를 약간 섞은 반죽을 깔고 파를 가지런히 얺히고 오징어와 고추를 썰어 올린다. 그 위에 계란물을 올리고 한 번 뒤집으면 완성. 아내는 맥주를 한 잔 따르고 나는 와인을 마시며 갓 부쳐낸 파전을 먹는다. 강이도 맛나게 먹는다. 다 먹고 강이와 자전거를 타고 들이를 데리러 간다. 학원에서 돌아온 들이에게 파전을 부쳐주니 들이 역시 맛나게 먹는다. 이게 주부의 기쁨이다. ㅎㅎ

 

 

 

하루가 금방 가버린다.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책을 읽고, 밥을 해먹는 일상을 보냈다. 특별할 일도 없는 일상이다. 그렇지만 평소에 이런 생활과 멀리 있던 나에게는 눈물나게 고마운 일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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