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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휴가 5일차

 

 

 

# 88. 휴가 5일차

  

 

 

평소에 치과에도 좀 다니고 해야 되는데, 한꺼번에 치료하려고 하니 돈도 들고 힘도 든다. 아침에 이 진료를 하고 도서관에 간다. 책을 읽는데 가장 집중력이 오르는 곳은 역시 도서관과 사무실이다. 며칠을 끌었던 <조선공산당 평전>을 마무리했다. 뜨거운 시대에 뜨거운 삶을 살았던 알려지지 않은 별들. 요즘 자꾸 이런 책이 눈에 들어온다.

 

 

 

엄니한테 들른다. 아부지도 계신다. 평일 낮에 아들이 오니 웬일이여 하신다. 밥 먹을래? 라고 물어보시길래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으나 밥 주세요 했다. 뚝딱 차려 주신다. 맛나게 먹고 잘 먹었습니다 하니 부모가 자식 밥 차려주는 건 당연하다고 하신다. 매부가 허리 수술을 했다고 알려주셔서 오랜만에 공주랑 통화도 하고, 투자하고 계시는 주식 이야기도 한다. 그러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니 지금의 대통령을 참 못마땅해 하신다. 내가 잘 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려도 어디서 주어 들으신 건지 이상한 말씀만 하신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부모 자식간이지만 어찌 이리 견해가 다른지.... 마음이 상할라 할 때쯤 일어선다.

 

 

 

집으로 돌아와 잠깐 잠이 들었다. 아내와 막내가 오는 소리에 잠이 깬다. 아내는 공짜 영화가 있는데 보러 갈래? 라고 물어봐서 그러자고 한다. 막내를 데려다 체육관에 데려다주고 영화관에 도착하니,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와 있다. 민주당 시의원 후보들이다. 아내가 어떤 아줌마를 소개시켜줘서 인사를 하고 누구시냐고 물어보니 시장 사모님이랜다. 헐. 알고보니 무슨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 행사 같은 거다. 그걸 빙자한 선거 운동이지만. 미리 알려주면 내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암 말도 없이 데려간 거다.

 

 

 

아내가 아는 사람은 어찌 그리 많은지. 나는 어색해서 행사 자리를 피하고 영화 시작 시간에 맞춰 들어가 조용히 영화만 보았다. 소지섭 손예진이 나오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저 영화, 일본판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는데. 영화 제작 후 여주인공 타케우치 유우코가 남자 주인공과 실제 결혼했다는 뒷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풋풋하고 가슴 시리도록 예쁜 사랑 이야기. 약간의 신파는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를 보고 아내가 우리도 한 땐 저랬는데.... 한다. 그래, 우리도 서로 애틋해서 어쩔줄 몰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와 아이들이 세상의 전부인 시절이 아내에게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감당이 안될 정도로 아내의 세상은 넓어졌다. 나는 나의 세상을 쳐내고 쳐내서 점점 작게 만들고 있는 반면에 아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넓혀 나간다. 이젠 서로의 세상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시기인데 나도 아내도 그게 잘 안된다. 어려운 숙제다.

 

 

 

휴가가 절반이 지났다. 이제 나흘 남았다는 조바심이 생긴다.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과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지난 시간이 후회가 되는 건 충실하게 보내지 못했다는 증거다. 나의 몸과 마음을 옥죄는 막판의 현장 생활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남은 휴가 여유롭게 그러나 의미있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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