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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추석 전날의 풍경

 

 

 

# 25. 추석 전날의 풍경

 

 

  

깨끗히 닦은 후라이팬을 약불에 올리고 기름을 넉넉히 두른다. 적당한 온도다. 우선 소시지부터 부친다. 계란 옷을 입히고 노릇하게 구워낸다. 소시지 다음은 경단, 갈비살, 대구포를 부치고 그 다음은 야채다. 버섯과 호박에 튀김 옷을 가득 입히고 고기류보다 센 불에 빨리 부쳐낸다. 하이라이트는 고구마. 두껍게 썰고 기름도 고구마가 잠길 정도로 부어넣고 튀겨낸다.

 

 

 

오디오에서는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가 흘러나온다. 아~ 찌짐 디비는 배경 음악으로는 너무 화려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묘하게 어울린다.

 

 

 

언제부턴가 제사나 명절의 음식을 우리집에서 만들어 간다. 부모의 입장에서야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복작대며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명절의 맛이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시댁에서 모든 일거리를 다 하려면 이것저것 치닥거리 해야될 것이 많다. 익숙한 자기집에서 만들어 가져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결정적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부려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명절이나 제사에 쓰일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가게 되면서 전 굽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사실 나도 맘 편하다. 엄니 집에서는 엄니 눈치 보느라 아내를 도와주기가 쉽지 않다. 명절 음식 준비를 같이 하니 아내도 기분이 좋고, 아내가 기분이 좋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엄니 입장에서 보면 전에는 명절 전날 제사 음식만 딸랑 해오는 아들 내외가 얄밉기도 할테지만.

 

 

 

전을 다 부쳤다. 부침 가루가 남았다. 그렇다면, 정구지 찌짐을 부쳐 먹어야지~~~ 밭에서 정구지를 베어 온다. 땡초를 잘게 썰고 소금을 약간 넣어 간을 한다. 정구지 찌짐은 우선 얇게 부쳐야 한다. 두꺼우면 맛 없다. 그리고 기름을 아껴서는 안된다. 약간 과장에서 튀긴다는 느낌으로 부쳐낸다.

 

 

 

전 굽느라 송편 만드느라 출출했던 참인데, 정구지 찌짐을 꿀맛이다. 아내는 막걸리가 필요한 거 아니냐며 흥을 돋운다. 넉넉하게 만들어 놀러온 조카들과 맛나게 먹는다.

 

 

 

근데 우리 새끼들은 다 오데 갔나? 막내는 집에 있고 큰 넘, 둘째 넘은 아침부터 도망가고 없구나. 음식 만들어야 된다고 일찍 오라고 했지만 아마 귓등으로 듣고 들었을게다. 하기사 나도 열 몇 살부터 명절에 집에 있었던 기억이 없다. 장가를 가고 한참 동안도 명절 전날에 의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더랬다.

 

 

 

요것들을 한 번 잡아서 찌짐 디비는 거 시켜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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